빈 방을 치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돌처럼 얹고서
베개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고
흩어진 옷가지들을 개키며

몇 줄의 문장 속에 너를 구겨 넣으려 했던 나를 꾸짖는다
실컷 울고 난 뒤에도
또렷한 것은 또렷한 것
이제 나는 시간을 거슬러 한 사람이 강이 되는 것을 지켜보려 한다

저기 삽을 든 장정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그들은 나를 묶고 안대를 씌운다
흙을 퍼 나르는
분주한 발소리
나는 싱싱한 흙냄새에 휘감겨 깜빡 잠이 든다

저기 삽을 든 장정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분명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사방에서 장정들이 몰려와
나를 묶고 안대를 씌운다
파고 파고 파고
심지가 타들어가듯

나는 싱싱한 흙냄새에 휘감겨 깜빡 잠이 든다

저기 삽을 든 장정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가만 보니 네 침대가 사라졌다
깜빡 잠이 든 사이
베개가 액자가 사라졌다
파고 파고 파고
누가 누구의 손을 끌고 가는지
잠 속에서 싱싱한 잠 속에서
나는 자꾸만 새하얘지고

창밖으로
너는 강이 되어 흘러간다
무릎을 끌어안고
천천히 어두워지는 자세가 씨앗이라면

마르지 않는 것은 아직
얼려 있는 것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린다

세상 모든 창문을
의미 없이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안희연, <너를 보내는 숲>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