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고대의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 _ Max Weber

2. 위 구절을 인용하다, 고병권의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한 대목이 화제가 되었다. “내게 ‘교수’는 ‘생계 걱정 않고 학문에 전념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생계 때문에 학문하는 자유를 일정하게 포기하는 사람’에 가깝다.”

3. “여기서 두 철학자 이야기를 하고 싶다. 똑같은 대학에서 임용 제안을 받은 두 명의 철학자. 한 사람은 학문의 자유를 위해 그것을 거부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학문의 자유를 위해 그것을 수락했다. 그 두 사람은 스피노자와 헤겔이다. 이들의 사연은 피에르 마슈레가 쓴 <헤겔 또는 스피노자>에 자세히 실려 있다. … 스피노자가 교수직 제안을 거절한 143년 후, 헤겔 역시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부터 교수직 임용 제안을 받았다. 흥미롭게도 하이델베르크 대학 총장은 헤겔에게 보낸 편지에 스피노자를 초빙하려 했다 실패한 과거를 언급했다. 그러나 헤겔은 스피노자와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대학에서의 연구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교수직 제안을 수락한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편지 말미에 자기 속내를 슬쩍 얹었다. 보수를 더 높여주고, 숙소를 무상으로 제공할 것이며, 이사비용을 지불해 달라고 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헤겔은 총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다시 보내면서 ‘철학만큼 고독한 학문은 없는 까닭에’ 자신은 ‘좀더 활기찬 활동 영역에 대한 욕구를 깊이 느꼈으며’ 그 동안 대학에서의 학문적 ‘상호작용이 없던 것이 연구에 큰 장애였음을 통감하고 있다’고 했다. 스피노자가 제도 바깥의 고독 속에서 자유를 발견했다면 헤겔은 재야의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 제도를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헤겔이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머무른 것은 겨우 1년이었다. 그는 명성이 더 높아진 후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베를린 대학에서 제안이 들어오자 금세 자리를 옮겨버렸다.”(160~1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