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역균형 혹은 사회배려를 가리켜 역차별이라 하는 원성이 크다. 기회와 과정이 아닌 결과의 입장에서만 사태를 판단한다면 그럴 수 있다. 각개약진의 시대에서, 지역균형과 사회배려는 요청되고, 또 거부된다.

2. 타인의 표현을 수용하는 귀(Ear)는 인간의 신체 중에서 표현력이 가장 빈약하다. ‘싸나이’들은 학교생활에 순응하는 학생들을 ‘귓구멍(Ear-hole)’이나 ‘귓볼(Lobes)’이라며 조롱했다.

3. 자기배제를 적극적으로 선택했다는 말은 싸나이 자신들 나름으로 학교사회를 간파하고 대항하였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저항이 가담이 되는 “노동자 되기”(Learning to Labour)의 자발적 복종은 주체가 되고자 하였으나 객체로 전락하는 ‘수술 중 각성’의 일면을 제시한다.

4. “만들어진 인재”이길 거부하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세태에서 어떻게 인생의 최종근거를 회복할 것인가. 이것이 관건이다.

*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윌리스(Paul Willis, 1945~)가 조사했던 그런 학교가 영국에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뤄지고 있는 문제아들의 문화가 영국 학생 문화의 전형적인 모습은 아니다.”(238) 다케우치 요우의 이같은 논평은 <학교와 계급재생산>의 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실토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