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흡혈박쥐의 일생은 힘겹다. 온혈동물이지만 깃털이나 털이 없기에 몸의 열을 많이 잃는다. 따라서 에너지가 아주 많이 필요하다. 흡혈박쥐는 끼니마다 자기 몸무게의 50~100%에 이르는 먹이를 소비한다. 하지만 흡혈박쥐 가운데, 많으면 3분의 1이 밤에 끼니를 얻지 못할 수 있다. 한 끼라도 거르면 위험하다. 흡혈박쥐는 먹이를 먹지 못하면 60시간 후에 죽는다. 왜냐하면 그 무렵이면 체중이 25% 줄어들어 임계체온을 더는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흡혈박쥐는 먹이를 나누는 정교한 협동체제를 발달시켰다. 먹이 나누기는 어미와 새끼 사이뿐 아니라 어른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 서로 돕기가 중요하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흡혈박쥐의 연간 사망률은 연이어 이틀 밤 끼니를 거를 확률을 바탕으로 계산해보면 약 80%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사망률은 약 25% 정도인데, 그 까닭은 먹이 나누기 덕분에 위험한 밤이 찾아와도 무사히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_ Joan Roughgarden(2005[2010]). 노태복(역). <진화의 무지개(Evolution’s Rainbow: Diversity, Gender, and Sexuality in Nature and People)>. 뿌리와 이파리.

2. 스티븐 제이 굴드는 <풀하우스>에서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임을 역설한다. “그의 주장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둘째, 진화는 사다리 오르기가 아니라 가지가 갈라지는 과정이다. 셋째, 진화에서 우연의 역할은 중요하다.”(이명희)

3. P. A. 크로포트킨 역시 주장하듯 진화의 주 요인은 ‘적자생존’이 아니라 ‘상호부조’이다. “크로포트킨은 작은 곤충에서 조류, 수많은 동물들의 개별적인 사례들을 천착하면서 결국 상호부조야 말로 가장 번성하고 발전된 종들에게는 일종의 철칙처럼 나타나고 있으며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로 작용한다는 점을 증명하려 했다. 약하고 작은 개체들도 무리를 짓고 사회를 구성해서 서로 작은 힘을 연대하게 되면 막강한 외부의 적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종보다 더 오래 살며 혹독한 자연 환경에도 효율적으로 대처해서 종들이 번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에게 편견의 대상이었던 원시인이나, 야만인, 미개인들도 실상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잔인하게 이웃을 해치는 현상만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협동하고 연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이 무제한적으로 내몰리는 경쟁의 역사가 아니라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구성원들을 최대한 보호하고 공존하게 하는 지혜로운 장치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온 역사라고 크로포트킨은 체계적으로 증명하고 있다.”(김영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