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서한집은 배영진 목사가 2005년 5월부터 2010년 9월까지 주보의 지면을 빌려 하늘문 성도들에게 전한 글들을 ‘성화의 견인’이라는 주제 하에 엄선하여 엮은 것이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존 오웬(John Owen)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목회자를 세우신 것은 성도들이 그를 통하여 참으로 신자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게 하시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참으로 신자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지표이자 여정으로서, 성화(聖化)의 완곡한 정의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화는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The Letters of Jonathan」에 면면히 배어 있는 애통이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신자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단지 주님을 앙망하십시오. 그러한 자세가 곧 주님께 우리의 삶을 양보하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사랑에 자신을 완전하게 내어맡기는 것만이 우리의 삶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비결입니다.” 이러한 권면을 대할 때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 대개의 경우 좌절한다. 그 숭고한 경지를 추앙한 들, 과연 어떻게 자아를 부인할 수 있다는 말인가. 목적에 이르는 길에 무지하다면 성도는 이따금 차가운 열정을 데워 피상적인 간증을 나눌 뿐 인격의 변화 곧 성화의 도정에 오르지 못한다.

유소년 시절 구타를 일삼은 부모 밑에서 성장한 자녀는 그것의 부당함을 인지하고 혐오하나 답습한다. 왜 그러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성화의 열쇠를 제공한다. 신자는 분명 죄의 불의와 귀결을 알고 더욱이 상한 심령으로 통회하나 악을 따른다. 때로는 자신을 탓하고 때로는 ‘어쩔 수 없다’며 현실을 개탄하나 여전히 결론은 동일하다. 죄악을 행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신자가 사후(ex post)에 여호와의 질책이 두려워 자위의 수단으로 죄를 회개할지언정, 사전(ex ante)에 주의 은혜에 감격해 탐욕을 미워하며 죄를 절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악습의 원인은 죄죽임(mortification)의 결여인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구축되어 정체성 - 이를 일컬어 성경은 ‘견고한 진’이라 한다 - 을 형성한다. 첫째가 ‘구조화된 구조’로서 사회의 체제에 따라 형성되는 마음판(Regime of Heart)이고, 둘째는 ‘구조화한 구조’로서 내면의 성향에 의해 보강되는 마음틀(Frame of Heart)이며, 상술한 양자가 결합하여 신자의 활동에 자기구속성을 행사하는 ‘행위 규범의 복합체’인 마음의 정체(政體, Institution of Heart)를 구성한다. 신자의 영혼은 마음의 정체가 선호하는 경향성에 따라 좌우되어, 외부의 접촉으로 생성되는 정념(passio)이나 내부의 상상으로 발현되는 정욕(epithymia)의 방향을 결정한다.

배영진 목사의 서신에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기저에 배태되어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본서가 추구하는 성화란 마음의 정체를 변혁함으로써 죄의 작용을 통제하고 추동하는 내면의 체질을 개편하여 죄악이 아닌 은혜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며, 이러한 성화의 견인은 조나단의 서신 속에 목회의 5가지 요소인 ①예배, ②교육, ③교제, ④봉사, ⑤전도와 조응하여 총체적으로 기록되어있다: 성화의 근원인 ‘예배’와 단계별 변화를 도모하는 ‘교육’, 사랑의 동심원적 확장을 지향하는 ‘교제’와 그것이 가정교회를 통해 체계적으로 실현되는 ‘봉사’, 그리고 앞선 모든 것을 통해 감당하는 사명 ‘전도’.
  
성화는 요란한 자기의지를 포기함으로써 온전한 자유의지의 회복을 지향한다. 다시 말해 자기가 있되 자기가 없어야 하기에, 성화는 [자신의] 성화 자체가 목적일 경우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다. 따라서 성화로 가는 길은 반드시 하나님과 인간을 잇는 공동체 가운데 있다. 하늘문 교회 성도는 이와 같은 신조를 공유하고 또한 유념하고자 배영진 목사의 50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본 서한집을 기획하였다. 탐욕이 팽배하여 오만과 절망으로 점철된 극단의 시대에 위계의 제고를 포기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경계의 확장을 희구하며 「The Letters of Jonathan」를 편집 출간한다.

2010. 9. 10, 편집부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