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 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는 베스트팔렌 체제와 케인스주의에서 비롯된 ‘정의가 적용되는 범위가 근대 영토국가 내부’라는 인식이 오늘날 정의론을 위기에 빠뜨린 주범이라고 본다. 기존의 정의론이 천착했던 문제는 경제적 분배 또는 사회적 인정 등 1차원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지구화의 확대는 작금의 정의론이 가진 내용과 방법 모두에 혼란을 가져왔다. 예컨대 에이즈의 확산, 국제 테러리즘, 유전자 조작 곡물, 이주 노동자 등 영토국가의 경계를 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이전의 정의론은 더이상 보편적인 문법으로 작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정의를 확산하는 강력한 악효과까지 낳는다. 따라서 프레이저는 ‘3차원적 정의론’을 제기한다. ‘경제적 분배’와 ‘사회적 인정’을 묶고, 여기에 ‘정치적 대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representation)는 분배와 인정에 관한 투쟁들이 펼쳐지는 무대를 제공하는 장치다. 정치적 대표의 도입은 특정 대상을 배제하는 ‘대표 불능’의 부정의를 바로잡는다. 곧 분배와 인정을 위해 투쟁을 벌여야 할 자들이 공론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무대를 만드는 과정까지 민주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 아무 것도 새로울 게 없는 하나마나한 소리(하버마스5, 푸코7, 아렌트8)로 점철되어 있으나, 2(9)장 - The Politics of Framing: Reframing Justice in a Globalizing World - 은 검토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