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블런은 “공동체 전체의 효율적 생산 활동을 담보해 주는 지식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화폐 가치를 가질 수 없으며, 또 자본도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벌어지는 생산 활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강조한다. 오로지 특정인이 그 공동체 전체의 지식을 ‘볼모’로 잡아 사회 전체로부터 ‘몸값’을 뜯어낼 때에만 이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며, 그러한 지식이 특정인의 이윤 창출을 위한 도구인 ‘자산’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어떻게 이러한 ‘인질극’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인가. 생산의 수단과 방법에 관한 공동체 전체의 지식은 경제 단계가 발달함에 따라 특정한 ‘사물’에 체현되기 마련이다. … 폭력을 동원한 지배 계급이 그 사물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설정하게 되는데, 이 근대적 소유권의 실질적 의미는 사실상 ‘자신이 그것을 사용할 권리’가 아니라 ‘남들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권리’이다. 한 번 더 비유를 들자면, 지배 계급이 사회적 생산이라는 흐름이 통과할 수밖에 없는 기계나 장비 등의 ‘병목’을 잡아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동체 전체로서는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대가를 그 생산 수단의 소유자에게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되며, 이것이 그 장비로 생산된 재화에 대한 높은 가격과 그로 인한 높은 이윤으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 중요한 함의가 있다. 자본 소유자가 이윤을 높이기 위해 하게 되는 일은 산업 생산을 한없이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효율적 활용을 일정한 이윤이 보장될 만큼만 가동되도록 제한하는 깽판 놓기, 즉 베블런의 표현을 빌리면 ‘효율성의 주의 깊은 철회’(conscientious withdrawal of efficiency)라는 것이다. … 결국 베블런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사회적 모순이 생겨나는 대립선은 자본 대 노동이라기보다는 자본 대 사회”가 된다.

* 지난 11월 24일, 딸 아이의 페구균, 뇌수막염, 로타바이러스 장염 예방접종 비용은 32만원이었다. “공동체 전체의 효율적 생산 활동”을 저해하는 지적재산권 - ‘남들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권리’ - 의 깽판 놓기를 실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