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튀세르를 비롯한 프랑스 포스트모던 사상을 일본에 소개한 일본의 현대 철학자이자 사상 연구가인 이마무라 히토시(今村仁司)가 쓴 『貨幣とは何だろうか』”는 “화폐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 화폐의 사회철학적 의미를 밝히기 위해 히토시는 짐멜의 『화폐의 철학』부터 괴테의 『친화력』,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 루소의 『언어 기원론에 관한 시론』까지 망라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철학적 의미의 화폐란 인간 관계에서 폭력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매개 형식이다.”

2. “주요 논의 틀인 ‘관계의 매개 형식’은 짐멜의 화폐 철학을 계승한 것이다. … 히토시는 짐멜의 입장을 바탕으로 화폐의 존재를 인간의 실존과 비교해서 봐야 한다고 말하며, 인간 고유의 관념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 관념에 주목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의 개념을 갖고 있지만 죽음이 눈앞에 닥치지 않은 이상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죽음을 나의 죽음처럼 느끼지 않기 위해 타자화하고 거리화한다. 히토시는 마르셀 모스가 마오리족의 증여 행위를 분석한 글을 인용하면서, 증여 행위가 인간 관계에 생과 사의 단절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남기는 증여물은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동시에 증여라는 매개 형식으로써 둘 사이에 거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증여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 형식을 띠게 되었고, 그렇기에 화폐의 뿌리는 본래 죽음의 관념이라고 볼 수 있다.”

3. “화폐라는 매개 형식의 존재 방식과 인간 존재의 유사성을 설명하기 위해 히토시는 괴테의 『친화력』과 지드의 『위폐범들』을 ‘화폐 소설’로 규정하여 논한다. 화폐 소설이란 … 관계의 안정과 질서 또는 도덕과 규칙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매개 형식’을 주제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친화력』과 『위폐범들』을 ‘매개자’에 관한 소설, 즉 화폐 소설로 보는 것이다. … 화폐와 같은 매개 형식은 각자의 욕망이 그대로 맞부딪칠 수 있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과 인간의 충돌, 인간과 자연(신)의 충돌을 방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들 소설에서는 관계의 매개 형식이나 그러한 매개 역할을 하는 인물, 소재 등이 부재할 때 발생하는 갈등이 이야기의 큰 줄기가 된다. 『친화력』에 등장하는 ‘무덤 파괴’ 이야기나 『위폐범들』에 나오는 몇몇 죄 없는 인물들의 죽음은 규칙이나 관습 같은 제도화한 매개 형식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충돌 상태를 그린 것이다.”

4. “히토시는 화폐와 문자의 유사성을 고찰하기 위해 루소와 데리다를 인용한다. … 어떤 존재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닐 수 없고 무언가를 매개함으로써만 의미를 지닌다는 데서 화폐와 문자는 공통점을 갖는다. 자연 상태의 인간을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 루소에게 아름답고 청결한 존재성은 윤리성으로 연결되고 불투명함은 오염, 불순, 죽음과 연결된다. 따라서 타자와의 관계에서 투명성과 직접성을 유지하려면 중간자와 매개자는 추방되어야 한다. 루소가 장애물이나 중간자를 혐오한 것은 이 때문이다.”

5. 히토시는 “마르크시즘의 화폐 폐기론을 국가사회주의와 조심스럽게 연결시키며, 화폐(자본)에 관한 심도 깊은 논의를 펼친 마르크스의 이론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화폐를 단순히 경제결정론의 차원에서만 바라봤다는 점에 아쉬움을 피력한다. 화폐의 폐기는 경제학적인 차원에서는 이상적일 수 있지만, 인간 존재의 근원에 결부해 생각해볼 때 하나의 매개 형식이 폐기된다면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수 있으며 그것은 중국 혁명이나 캄보디아 킬링필드 등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이미 증명되었다. … 형식으로서 화폐는 매개자이기 때문에 정치, 경제, 언어, 문화 등 인간 일반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며, 인간 관계에 내재하는 폭력의 제도적 회피 장치라는 완충 역할을 한다. … 따라서 인간 사회에서 화폐는 반드시 발생하고 존속한다. 만약 화폐를 폐기한다면 인간은 곧 스스로가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히토시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를 전거로 ”증여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 형식을 띠게 되었고, 그렇기에 화폐의 뿌리는 본래 죽음의 관념”이라 주장한다. 우활한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