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보았던 글귀가 아른거린다. 장석주의 것으로 기억된다. 복잡다단한 현실을 기술하는 것과 현실을 번잡스럽게 기술하는 것은 다르다. “이 책(아케이드 프로젝트)에는 체계나 정교한 서사구조가 없다. 소비와 사치의 천국, 자본주의 제국의 핵심 수도, 그 파리에 대한 관상학적 독해를 보여 주는 자료들과 벤야민 자신의 단상들이 그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파편화된 형식의 나열이 언뜻 보여 주는 것은 혼란이다. 그러나 혼란을 보여 주는 것과 혼란스럽게 보여 주는 것은 다르다. 벤야민은 환등상(phantasmagorie)의 미망으로 덧씌워진 파리의 혼란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