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숙이 찾아 왔다. 진로에 관해 아내와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분주함(Business)이 화두였다. 우리시대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은 지탄의 대상이다. 그들은 엘리트 전문직으로서, 초인적 헌신으로 직장과 교회에서 각각 신우회와 제자훈련을 인도하나, 부지불식간에 거대한 세력화를 도모한다. 교계의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소망교회 보다는] ‘사랑의 교회’의 주 구성원이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2. 라니 구니어(Lani Guinier)가 지적하듯 어떠한 조직의 정상을 향하여 충성되이 등정하는 자는 [강판 위에 올라선 치즈 마냥] 당초의 신념을 유실하고 주류의 상식을 수용하고 만다. 숭고한 그리스도인의 경제사회적 발언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빈번히 신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목장의 침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예수와 세상을 동시에 섬기며, 친밀한 교제에 열심을 경주하고자 하는 이유가 풍성한 축복으로 변질되고 있다. 주께서 요청하시는 ‘삶의 방식’의 개혁은 유념치 못한 채 신음하고 있다. 정직한 질문의 결여가 정직한 대답의 부재를 초래하였고, 그러한 연고로 대결을 동반하는 진리가 소실되었다. 세계관의 변혁이 절실하다. 그러나 진정한 관건은 그 다음이다. 쉐퍼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수술 중 각성’을 극복할 수 있는가.

* 진보적 중간층 인텔리 _ “생각은 진보이나 돈과 지식이 있어 자식들 문제에 있어서는 욕먹을 짓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 “적은 아니되 왠지 혼란을 가중시키는 분들”, “얘기하다보면 무언가 말이 되는 것도 같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무언가 교묘하게 할 건 다하면서 이명박 욕하”는 자들, “아마도 좌파시민행동에 가장 많은 퍼센트를 차지할 것도 같고 가장 최전선에 나서실 것도 같은 그런” 이들. 과연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은 임재하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