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 그리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2. 예수께서 목숨을 걸고 내건 검은 세상과 불화하는 ‘섬김’(to serve)이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역설하였듯, 공격 본능의 대척점에 위치한 이웃 사랑은 불가능하다. “부인할 수 없는 차이가 제거되지 않는 한, 고상한 윤리적 요구 -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 에 복종하는 것은 <악>에 절대적인 이익을 주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문명의 목적을 해치게 된다. … 사유 재산을 폐지하면, 인간의 공격 본능이 이용하는 도구 가운데 하나를 빼앗을 수 있다. 그 도구는 가장 강력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강력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유 재산을 폐지해도, 공격 본능이 악용하는 힘과 영향력의 차이를 바꿀 수는 없고, 공격 본능의 본질을 바꿀 수도 없다.”(Freud, 1929[2003]: 289, 291)

3. 쉐퍼는 라브리(L’Abri)를 통해 공격 본능에 대항하는 전방위적 문화사역을 전개하였다. “그런 사상을 갖게 된 배경을 물어봐도 될까요? 당신은 반틸에게 배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제를 강조하는 그의 입장과 당신의 입장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군요.” “그 물음을 물어 주셔서 참 좋습니다. … 만일 당신이 사유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련의 전제들이 (당신이 품은) 의문들을 응답해 줄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나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토대로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특히 오늘날은 더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다수는 자신의 전제를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교육을 받은 이들도 그렇습니까?” “이 영역과 관련해 대학교 출신만큼 무지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이 그 시스템에 붙잡혀 있으면 있을수록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수용할 확률이 높고, 아주 단순한 것조차 생각하지 않고 갈수록 더 맹목적이기 싶습니다. … 이 경로를 따라가면 어디에 도달할지를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Colin Duriez, 2008[2009]: 387~390)

4. 쉐퍼의 논지와 실천은 대안이 아니다. 그는 비판 의식이 상당한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쉐퍼에게서 주목할만한 점은 - 샤칼(saw-kal)이나 호크마(khok-maw)가 아닌 - 레브쇼미아(leb-shomeah) 즉, ‘들을 수 있는 마음’으로 “십자가의 대속적 은혜를 ‘순간 순간 믿는 것’(moment by moment trust)이었다.” 쉐퍼는 “그외에 어떤 제도나 전통, 형식, 운동, 조직을 더 강조한다면 그것은 거짓 영성”이라 주장하였다. 예컨대 그는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만약 라브리에 영적 실체가 상실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제도적이거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계속 유지하려고 애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때는 차라리 문을 닫는 편이 낫다.”

5. 쉐퍼가 전한 영성에 관한 고뇌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면 두 형제가 혁명에 성공한 이후에 노선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 형이 아우를 죽이잖아요. 그때 ‘우리가 적과 싸울 생각만 했지, 우리가 만들 세상은 생각해보지 않았다’라는 말을 하는데요. 쓰신 글 가운데 ‘내 밖의 적과 싸우는 일을 혁명이라 하고, 내 안의 적과 싸우는 일을 영성이라 할 때, 역사 속에서 혁명과 영성의 편향은 번갈아 나타난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그 영화가 떠올랐어요.”(지승호/김규항, 2010: 213)

6. 켄 로치와 가라타니 고진의 문제의식이 겹친다. “1989년 이후 나는 변했다. 그때까지 나는 종래의 마르크스주의적 정당이나 국가에 대해 비판적이었는데, 그 비판은 그들이 계속해서 강고하게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었다. 그들이 존속하는 한 단지 그것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무언가를 했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그들이 붕괴했을 때 나는 역설적이게도 나 자신이 그들에게 의존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뭔가 적극적인 것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칸트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그때부터였다.”(18~19) “1990년까지 나는 적극적인 말이라면 어떤 발언도 할 수 없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 후로 자본제 경제나 국가에 대한 계몽적 비판 또는 문화적 저항에 머무르는 데 만족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려 하는 과정에서 칸트를 만났다. … 나는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이론을 제출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전의 책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이론을 제출할 때는 그것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누구도 트집을 잡을 수 없는 범위에 그친다면 아카데믹한 책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만족할 수 없었다.”(柄谷行人, 2001[2005]: 12)

7. 다음의 일화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어요. 그 앞에 선 채로 나는 매우 착잡한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때 떠오른 것이 [맹자의] 곡속장(觳觫章)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 여자와 내가 만난 적도 없고 다시 만날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하철은 평균 20분 정도를 승차한다고 합니다. 승객들은 평균 열 정거장 이내에 서로 헤어지는 우연하고도 일시적인 군집일 뿐입니다. 나는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 부끄러움은 관계가 지속적일 때 형성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20분을 초과하지 않는 일시적 군집에서는 형성될 수 없는 정서입니다. 다시 볼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피차 배려하지 않습니다. 소매치기나 폭행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잠시만 지나고 나면 그것은 나와는 아무 관계 없는 일이 되는 것이지요. (중략) 지속적 관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서로 양보하게 되고 스스로 삼가게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남에게 모질게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곡속장을 통하여 반성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맹자는 제선왕이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한 사실을 통해 … 보민保民의 덕을 보았던 것입니다.”(신영복, 2004: 238~242)

8. 묵자에 따르면 “사회의 혼란은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天下之亂物, 皆起不相愛). “만약 천하로 하여금 서로 겸애하게 하여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한다면 어찌 불효가 있을 수 있겠는가”(若使天下 兼相愛 愛人若愛其身 惡施不孝). 억압된 분노의 치유가 절실한 시기에, 강인하고 사려깊은 우정을 형성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정직하게 절망한다. ‘나는 무력하다.’ 그리고 진실되게 고백한다. ‘주는 전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