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정신현상학이 ‘성화의 여정’이라면, 논리학은 도야 이후에 규정한 ‘성화의 체계’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전자의 종결이 곧 후자의 출발이다.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은 같은 이야기를 두 번 하는 거지. … 죽기 직전에 자신의 인생을 말할 때, 나면서부터 지금까지를 주욱 말하기도 하고, 그걸 재료로 삼아 인생의 목적이라는 관점에서도 말하기도 하는 것처럼.”

1-2. “[논리적] ‘이행’을 [실재적] ‘변화’로 읽으면 안 되고 각각은 각각을 전제하지 않으면 사유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으로 이해해야. 이게 시간을 개입시킬 수도 없는 건데 사유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는 거니까. 헤겔 논리학이 ‘신’ 개념을 배면에 숨겨둔 세계 창조 및 형성론이기에, 아우구스티누스의 ‘무로부터의 창조’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2-1. “목표, 즉 절대적 지, 또는 스스로를 정신으로 아는 정신은 그것들 각각에 있어서, 그리고 정신의 왕국의 구축을 성취해온 정신의 기억을 자신의 도정으로 삼는다. 그것의 기억의 보존은 우연성의 형식에서 나타나는 자유로운 현존의 측면에서 보면 (자유로운 정신의) 역사이지만, 개념의 체계의 측면에서 보면 현상하는 지의 학이다. 둘을 결합한, 개념적으로 파악된 역사는 절대적 정신의 기억과 골고다의 언덕, 현실성, 진리, (절대적 정신의) 왕좌에 대한 확신을 이루거니와, 그것이 없다면 절대적 정신은 생기없는 고독이 될 것이다. 오로지 이러한 정신의 왕국의 술잔으로부터 그에게는 그의 무한성이 부풀어 오른다.”

2-2. “정신의 전개의 최종 목표는 자신이 정신임을 아는 절대적 정신이다. 이러한 목표에 이르는 동안 정신은 자신의 왕국을 구축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구축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스스로 운동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그러한 운동을 상세히 서술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정신의 전개과정, 즉 역사이다. 그러나 신적 정신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절대적 정신의 드러난 형성태들이다. 이 둘의 결합, 즉 유한한 정신과 절대적 정신의 통일은 ‘개념적으로 파악된 역사’이다. 그런데 그러한 역사는 느긋한 도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골고다의 언덕’을 거쳐온 역사이다. 절대적 정신이 이러한 수난의 역사를 결하고 있다면 참다운 무한자가 아니다. 그것은 ‘생기없는 고독’일 뿐이요, 악무한(惡無限)이다. ‘이러한 역사는 … 절대정신으로부터 유리된 그 무엇, 신 자체에는 관심없는 신에로의 여정’이 아니라 신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는 헤겔의 새로운 종교이며 철학이다.”

3. “이뽈리트는 ‘지에 다가서는 개별적 의식에 관련해서 뿐만 아니라 정신과 그 역사적 전개에 관련해서, 그리고 종교에 관련해서 이 새로운 형태가 지니는 의미란 무엇인가?’를 묻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확실히 그것은 «정신현상학»에 있어서 가장 애매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절대지에 관한 매우 압축적이고 추상적인 구절들도 이 점을 별로 밝혀주지 못함을 우리는 솔직이 시인하여야 한다.’(I, p.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