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니던 1942년 영국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47년에는 유고슬라비아와 불가리아에서 자원봉사단의 일원으로 철도부설 사업에 참여했다. 학부 과정만 마친 그가 역사가 수업을 쌓은 것은 1946년 영국 공산당 내에 구성된 ‘역사학자 모임’에서였다. 그는 이 모임에서 유수한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며 도나 토어 등의 지적 영향을 받았다. 그가 쓴 첫 역사서는 <윌리엄 모리스, 낭만주의자로부터 혁명가로>(1955)였다. 1956년 그는 소련의 헝가리 침공 이후 영국 공산당을 탈당했고 이 무렵부터 좌파에 뿌리깊게 남아 있는 스딸린주의 경향과 싸우며 반핵운동에도 깊이 간여하기 시작했다. 그는 1957년 [New Reasoner]지와 1960년 [New Left Review]지를 창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1963년 자신의 주저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출간했다. 1965년부터 1971년까지 워릭대학 교수를 지낸 외에 평생 자유로운 저술가이자 운동가로 지냈던 그는 18세기 영국 민중사연구의 일환으로 <휘그파와 사냥꾼들(Whigs and Hunters: The Origin of the Black Act)>(1975)을 비롯한 여러 저작들을 내놓았고, 1970년대 말 알뛰쎄르를 비판하는 <이론의 빈곤>(1978)을 썼다. 1980년대 들어 그는 반핵 평화운동을 주도해 냉전체제의 일각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으며 1993년 8월 자신의 글을 모은 책 <역사를 만듦>(1994)의 짤막한 머리말을 쓰는 것으로 집필생활을 마감한 뒤 작고하였다. 1980년대 Arts and Humanities Citation Index에 따르면 그는 20세기 역사가 가운데 가장 널리 인용된 역사가였으며,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빈번히 인용되는 250명의 저자들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