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없는 행위는 공허하고, 행위 없는 구원은 맹목적이다.’ 양자의 이율배반을 해결할 실마리는 ‘믿음’에 내재된 이중 가치 체계(double value system)에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복음, 곧 신적 권능에 의거하여 구원을 이뤄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를 상품의 가치실현에 비유하면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모든 인간[물건]이 신자[상품]는 아니며, 모든 신자[상품]가 구원[교환가치]을 얻지는 못한다. 인간[물건]은 오직 믿음[생산]으로 복음[사용가치]을 시인해야만 신자[상품]가 된다. 그러나 신자[상품]가 성령[화폐]을 좇는 행위[유통] 속에서 삶의 주인이 변경되는 자기부인[판매 즉, 목숨을 건 도약]을 성취하지 못할 경우, 썩어 없어질 육신[재고]에 머물어 ”죽음[폐기]에 이르는 병”을 얻게 된다. 이처럼 복음[사용가치]이 전제되지 않을 시 구원[교환가치]은 가능하지 않거니와 구원[교환가치]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믿음에 따른 복음[사용가치]의 수용은 무익해진다. 따라서 구원 이후에만 믿음의 진위가 밝혀진다는 점에서 [가치평가에 대비되는] 기독 예정(론)은 사후적 관점의 고백(론)이라고 할 수 있다.

* 자기부인은 일생에 거쳐 수행되는 성화의 결과이다. 예수를 ‘주인’으로 시인하는 것과 예수가 ‘주인’으로 좌정하는 것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