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코(Giambattista Vico, 1668~1744)는 “데카르트의 영향 아래 수학적 지식만이 진리의 근거라고 여기던 시대에 …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이 알 수 있다’는 명제를 내세움으로써 인간 사회와 역사가 연구의 합당한 대상이라고 설파했다.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의 존립 근거를 확인해준 것이다. 그는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그 시대가 사용하는 언어에서 찾았다. 원시시대에는 신화와 민담과 같은 것이 사람들의 언어였기 때문에, 한때는 무시당했던 그런 자료가 그 시대에 대한 이해의 단초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입구라는 것이다. … 1968년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심포지엄이 뉴욕에서 열린 것을 계기로 무대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2.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3)는 “독일 프로이센의 모룽겐에서 태어났다. 동프로이센의 중심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대학을 다니며 칸트의 제자가 되었으나, 이 도시가 낳은 위대한 종교사상가 하만과 친교를 맺으면서 칸트와 사상적으로 대립하게 되었다. 대학시절부터 문예비평가로 활동하면서 일찍이 필명을 떨쳤고, 특히 청년들에게 지대한 정신적 영향을 주었다. 신학을 전공하여 목사가 된 그는 1776년 괴테의 주선으로 바이마르 교구 감독이 되었다. 헤르더와 괴테는 바이마르에 와 있던 계몽주의 문학가 빌란트, 후에 온 실러와 더불어 ‘바이마르의 네 별’로 불리며 독일에 신인문주의가 뿌리내리는 데 공헌했다. … 그가 주도한 질풍노도(Strum und Drang) 문예운동은 독일 근대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문화사적 사건이 되었다. 그의 사상은 괴테와 실러의 문학, 피히테와 헤겔 등의 독일 관념론 철학, 독일 낭만주의 문예운동, 훔볼트의 언어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Immanuel Kant, 1724~1804 / G.W.F Hegel, 1770~1831 / Karl Marx, 1818~1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