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이 이미 오래 학문에 종사했으므로 반드시 마음에 스스로 터득한 것이 있을 것이다. 만약에 실행하여 효험이 있었던 일을 아뢰면, 내가 듣고자 한다.”(영조)
2. “형서가 처음에 학문을 배울 때 ‘나는 하루에 세 번 점검한다’고 하였습니다. 명도가 이를 듣고는 ‘슬퍼할 일이로다. 그 나머지 시간에는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인가! 그가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을 알겠다. 무릇 공부가 있는 사람이면 날로 새롭게 하고 또한 나날이 새롭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필 어느 때에는 점검하고 어떤 곳에서만 점검한다는 것인가? 근본이 이미 서고 공부가 계속되면 하늘의 운행이 쉬지 않는 것과 같고, 또 해와 달이 늘 밝음과 같다. 마땅히 이와 같이 한 뒤에야 바야흐로 독실한 공부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오직 신독하면 중화를 이루는 것이고, 중화를 이루면 천지가 자리를 잡고 만물이 길러지는 것입니다.”(정제두)
3. “삼대 뒤로 공자 문하의 70 제자가 성인의 말씀을 들었으나 성과 천도에 관해서는 들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성인의 말씀이 이미 선현에 의해 주석이 되었고 또한 선유의 집주가 있어서 천도와 성명의 설을 사람마다 모두 외우고 있다. 그런데도 공부의 효험은 도리어 70 제자만 같지 못하고 쓸데없이 입이나 귀로만 서로 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영조)
4. “오직 문자에만 힘을 쓰고 몸소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충신은 덕에 나아가기 위한 수단이고, 말을 잘 닦아서 자신의 성실함을 세우는 것은 사업을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오늘의 유자는 충신의 공부는 하지 않고 먼저 말 잘하는 것에 힘쓰니, 이 때문에 옛사람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정제두)
* “조선 중엽 이후로 상참은 거의 하지 않고, 삼시강과 양시강도 많이 하지 않았으며, 주로 주강만 하고 가끔 소대와 야대를 행했다고 한다.”(김태완, 2011: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