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30년대 후반 파리에 망명하면서 <파사젠베르크>를 준비하던 벤야민은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다. … 그의 작업은, 1927년 그가 파리에 머물던 시기에 초현실주의자 루이 아라공의 소설 <파리의 농부>를 읽고 열광하면서 처음으로 착상되었다. 당시에는 작은 규모의 문학에세이 형식으로 파리의 파사주(passage)를 다룰 요량이었다. 그런데 이 기획이 1929년에 갑자기 중단되고 맑스의 텍스트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난 1930년대 초반 이후, 프로젝트의 범위가 대규모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그는 1930년대의 눈으로 다시 바라본 프랑스 제2제정기(1852~1870)의 파리를 좀 더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이후 약 10여년에 걸쳐 그를 괴롭힌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상황의 악화 속에서 벤야민의 생명을 유지시켜준 유일한 희망의 끈이 바로 파사주 프로젝트였다. 마침내 그가 1940년에 포르투갈로 도피의 길을 떠날 때, 그는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인용과 주석으로 구성된 원고뭉치를 당시 파리 국립도서관의 사서로 있던 바타이유에게 위탁한다. 이어 벤야민의 불운한 자살 이후, 피에르 미삭(Pierre Missac)의 주도와 바타이유의 협조로 간신히 다시 발견된 이 원고는 1947년 경 뉴욕에 있던 아도르노에게 건네졌고, 약 30여년이 흐른 1982년에 (2책으로 나뉘어) 전집의 5권으로 출판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현재의 판본에는 두 편의 개요(exposé)와 초창기의 초고들 그리고 책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른여섯 개의 묶음(Konvolut)으로 구성된 ‘노트와 자료들’이 들어 있다.”

2. “약 13년에 걸쳐 진행되어 결국 마무리되지 못한 이 방대한 작업을 통해 벤야민이 기획한 것은 무엇일까? … 방법론적 성찰을 집중적으로 수행한 묶음 N을 제외하면 특히 1939년에 불어로 씌여진 초고의 서론이 주목할 만하다. 거기에서 벤야민은 판타스마고리아의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를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기조음으로 설정한다. 원래 ‘판타스마고리아’는 맑스의 <자본>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에 기원을 둔다(Marx, 1867[1989]: 92). ‘인간의 눈에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라는 환상적인 형태(die phantasmagorische Form)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사실상 인간들 사이의 특정한 사회적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 요컨대 <파사젠베르크>는 20세기의 각성된 눈으로 19세기가 꾼 꿈(Traum)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벤야민은 19세기가 한편으로는 사적 개인을 발명하여 내면적이고 성찰적인 개인주의로의 지향을 보여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판타스마고리아에 빠진 집합체, 즉 ‘꿈꾸는 집단(das träumende Kollektiv)’ 또한 만들어내었음을 정확하게 통찰한다. 봉건적 질서로부터 해방되어 탈마법화되고 합리화된 세기로 19세기를 이해할 때, 우리는 그런 이성의 시대로부터 어떻게 20세기의 야만성이 도출되었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무기력하다. 하지만 벤야민이 보는 19세기는 합리성의 세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또 다른 신화, 꿈, 판타스마고리아가 지배하는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