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교에 대해 사상 최대의 박해를 했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특히 안티오쿠스 4세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했으며,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을 살해했고 성전 제단을 부정한 짐승의 피로 더렵혔다. 이로 인해 율법을 지키려는 수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했다. 특히 안식일을 지키려는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임을 당해야 했다. 이때에 예루살렘 북서쪽 모데인(Modein) 마을의 제사장으로 있던 마타디아스는 왕의 관리로부터 이방의 희생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을 받고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다른 유대인들이 앞으로 나와서 희생 제사를 드렸는데, 마타디아스는 이를 보고 분노해서 왕의 관리를 죽이고 제사드리는 자도 죽였다. 율법에 충실한 유대인들은 마타디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들과 함께 힘을 합쳤으며, 경건한 하시딤들도 그들에게 동조했다. 마타디아스가 죽자(BC 165), <망치Makkba>라는 별명으로 불린 셋째 아들 유다가 지휘권을 계승하였습니다. 게릴라 부대가 단시일 안에 유다의 노력으로 단일한 군사집단으로 변모하자 유다가 속한 하스몬 가문Hasmon(BC 166~63) - 유다의 할아버지인 아사몬Asamon에서 유래한다 - 은 이 지역의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마카비 일가는 마카비 시대 초기에 경건한 하시딤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마카비의 아우 요나단 아푸스의 통치 때에 하시딤은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그리고 에세네파로 분리되었다.”

“안티오쿠스 4세의 그리스화 정책과 종교탄압 정책에 강한 반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하시딤(Hasidim) 운동이다. 하시딤은 히브리어로 ‘경건’을 의미하는데, 이 운동은 한 마디로 말해서 ‘회개운동’ 이었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안티오쿠스의 잔인한 종교탄압을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향한 진노를 풀고 구원의 날을 내려주도록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 하시딤 운동에 참가한 자들은 안디오코스 4세의 칙령에 따라 무참하게 살해됨으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했다. 견디다 못한 하시드들은 대다수가 사막지대로 피신했다. 그러자 시리아 관리들은 하시드들의 은거지를 색출하여 잠복해 있다가 안식일에 쳐들어가 학살을 단행했다. 하시드들은 안식일을 지키기위해 습격을 당해도 도망도 저항도 하지 않고 부동자세로 앉아있었다. 따라서 공격자들은 적은 병력으로 많은 위반자들을 쉽게 처형할 수 있는 잇점을 살리려고 안식일을 택해 공격을 가하곤 했다. 그래서 한 자리에서 1천 여명을 살해한 기록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런가하면 한 어머니의 일곱 아들이 모두 하시딤 운동에 가담했다가 전원이 순교를 당한 사례도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