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각각 제사장과 왕에 빗댄다면, 언행은 선지자의 그것과 유사하다. 예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죽었으나, 선지자로 살았다. 신분/지위와 그에 상응하는 권능/영향력의 측면에서 오늘날 제사장의 역할을 목회자와 신학자가 담당한다면, 왕의 역할은 ‘장로’ 정치인과 기업인이 수행하고 있다. 그들이 생산-유통하는 교계의 주류 담론에, 나는 한편으로 수긍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외면하였다. 다시 말해, 숭고한 제사장을 추앙하면서 타락한 왕을 조롱하였다. 서준식이 그리하였듯, 예수와 맑스를 동시에 - 맑시스트가 아닌 크리스챤으로서 - 구현하기 원했다. 그러나 나의 사상은 시나브로 소수파의 주류 담론에 포획되고 화석화됨으로써 예상치 못한 시공 가운데 돌출하는 선지자의 목소리를 배제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바리새인들이 [일각에서 에센파로 추정하는] 세례요한을 거부한(눅7:30) 것과 동일한 행태를 취한 것이다. 물론, 플로리다 부흥(Florida outpouring)의 명사이자, 제2의 베니 힌으로 거론되는 토드 벤틀리(Todd Bentley)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다만, 니고데모의 자세를 견지할 필요성을 되새긴다. 이러한 점에서 존 맥아더(John MacArthur)의 글은 필독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