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께면 회색 교복에 어깨를 움츠린 중학생이 식당에 온다. 평일엔 어김없다. 들어와서는 물끄러미 주방 쪽을 바라본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인사하는 듯 고개를 돌린다. B감자탕집 주방 언니의 아들이다. 매일같이 만나지만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웃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학교가 끝나고 가게에 들러 엄마 얼굴을 본 뒤 집에 간다. 저녁 반찬을 담은 봉지를 받아가기도 한다. 2천원 용돈을 받아 PC방에 가기도 한다. 아이의 꿈은 만화가다. 엄마는 진작부터 그 꿈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다. 만화가는 돈을 못 벌 것 같아서다. 공부를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돈을 못 버는 건 싫다. 많이 벌길 바라는 건 아니다. 뭘 하든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딱히 다른 진로를 제시해주기 어렵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학원에 보냈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학원비가 18만원에서 25만원으로 올랐다. 둘째아이도 초등학교 5학년이다. 고민하다가 결국 둘 다 학원을 끊었다. 두 아이 다 성적이 부진하다. 그것도 진작부터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