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가 진평의 계책을 써서 초나라 군신간을 이간시켰다. 초의 항우는 범증이 한나라와 사통하고 있다고 의심하여 차츰 그의 권한을 빼앗았다. 범증이 매우 노하여, ‘이제 천하의 일이 다 결정되었으니 군왕은 스스로 알아서 하십시오. 저는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 말하고 미처 팽성에 이르기도 전에 등창이 나서 죽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범증이 떠난 것은 잘한 일이다. 떠나지 않았다면 항우가 반드시 범증을 죽였을 것이다. 다만 그가 좀더 일찍 떠나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그렇다면 무슨 일을 이유로 언제 떠났어야 했을까? … 막 항우가 경자관군을 죽였을 때, 범증은 항우와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의제를 섬겼으니 군신의 분수가 아직 정해지지 아니하였을 때였다. 범증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계책은 이때에 자기 힘이 항우를 처형할 수 있으면 처형하고 그렇게 할 수 없으면 떠나는 것이 의연한 대장부일 것이다. 범증의 나이 이미 70이었다. 뜻이 합하면 머무르고 뜻이 합하지 못하면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거취를 분명히 하지 않고 항우에 의지하여 공명을 취하고자 했으니 비루하도다. 그렇지만 범증은 고제(유방)가 두려워했던 인물이다. 범증이 떠나가지 않았더라면 항우는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아! 범증은 그래도 인걸이구나.”

* 소동파(지음), «마음 속의 대나무: 소동파 산문선», 태학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