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도에 유신을 하기 직전인 1971년, 김대중 후보와의 대통령 선거에서 서울에서 크게 졌다. 이런 상황에 처해지면, 집권 세력은 당연히 열세를 우세로 바꿀 정치적 전략을 구상했을 것이다. 강남 개발은 그 문제에 대한 일종의 해결안처럼 보인다. 당시 경제성장과 더불어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특정 세대의 집단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내 집을 제공해줌으로써, 그들을 정치적인 우호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리라고 판단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89년도에 노태우 정권이 ‘주택 200만호 건설’을 내걸었을 때도 이러한 정치적 판단은 실제로 굉장히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당시 87년도 (6월 항쟁) 이후에 한국사회 전반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급진화 되고 있었다. 정부 입장에선 민주화 투쟁을 주도한 특정 세대-특히 베이비붐 세대나 386세대-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면서 체제 내로 흡수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했다. 그리고 1기 신도시가 바로 그 통로였다.”

“아파트를 단순한 주거 형태나 투기의 대상물로 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사회·문화사적) ‘모델’로 보는 관점이 핵심이다. 박해천에 따르면, 아파트는 한국 사회 중산층의 탄생과 재생산을 매개했던 중요한 통로였다. 이러한 관점을 따르면 최근의 아파트 가격 하락은 단순한 ‘침체’가 아니다. ‘중산층 모델’의 종언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있을까.”

“아파트로 상징되는 중산층의 일상과 삶의 궤적이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한국 사회는 그런 변화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사실상 한 번도 ‘아파트 거주 중산층 모델’과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상상해 본 적이 없지 않나? …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었던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지배적인 방식 자체가 점차 무너져 가고 있는 상황으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