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서 몇 점을 받아야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을 갈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 입시 제도의 큰 틀이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바뀌었다. 한 번의 시험으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게 최선이냐는 반성론에서 나온 개편이다. 대신 예측 가능성이 있었던 입시가 불확실한 오디션 국면으로 바뀌었다. 대학이 칼자루를 쥐게 된 점은 분명하다. 응시생의 현재 능력뿐 아니라 미래의 능력(잠재력)까지 보겠다는 대학의 패기를 탓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최근 일부 대학의 납득할 수 없는 전형 결과를 보면 모든 대학의 패기를 응원해줘야 할지 의문이 생긴다. 장애 여중생 성폭행에 가담한 학생이 ‘봉사왕’으로 둔갑해 서울 한 대학의 입학사정관 전형에 합격한 일이 그렇다. 법원에 선처를 구하기 위한 학생의 인위적 봉사활동이 미래 리더로 활약할 자질로 평가됐다. 이 학생이 붙으면서 떨어졌을 또 다른 수험생이 결코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사전적인 예측 가능성은 없더라도 사후적인 납득 가능성은 있어야 공정한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