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머가 이 책에서 비판과 성찰의 표적으로 삼는 근대 학문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연현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 자연과학과 그 영향을 받은 인문사회과학의 실증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의식)과 인식대상의 ‘주객 동일성’을 전제로 삼는 관념론이다. 이 두 가지 흐름은 서로 상반되는 것 같지만, 둘 다 역동적이고 다양한 인간경험을 ‘방법’을 앞세워 재단한다는 점에서 진리를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 가다머의 관점이다. 가다머에게 진리는 어떤 방법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인간경험의 역사성으로부터 나오는 이해의 산물이다. 때문에 가다머의 해석학은 방법론이 아니라 존재론이다. … 그는 역사적 문헌·사건과 현재의 해석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지점에 주목했고, 이를 ‘영향사’(影響史, history of effect)라고 일컬었다.”

“‘동굴 안’은 역사세계이며 ‘동굴 밖’은 당위세계이다. ‘구경’(thea)은 이론적 통찰이다. 가다머의 ‘영향사’는 이 둘을 잇는 것을 사색한다.”(강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