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 데카르트, 뉴턴 모두 30년 전쟁의 그늘에서 살았으며, 세계와 인간에 대한 풍부하고도 관용적인 사유로 가득 찬 16세기 인문주의를 유산으로 물려받았으나 … 결과적으로는 인문학을 버리고 — 인문학의 위기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 과학의 이름으로 종교에 대한 정치의 우위, 세속적 국가의 건설, 탈신화화된 국가를 정당화하였다. (중략) 자연과학적 시간에 바탕을 두었다는 ‘합리적 예측’과 종말론의 근대적 변형판인 ‘역사철학’의 혼합, 이것이 종교를 폐기한 근대의 정치를 규정한다. 합리적 예측이 정치를 주도하면 세계는 계몽의 프로젝트에 따라 홉스의 꿈이었던 리바이어던을 구축한다. 다른 한편 쇼르스케가 지적했듯이 “합리적 예측이 위력을 잃을 때 정치는 마술이 된다. (중략) 올해는 마술사들이 특히 날뛰는 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마술사도 국가를 당해낼 도리는 없다.”

혼돈에 대한 통제의 열망이 우주적 질서(폐쇄체계)와 사회적 질서(개방체계)의 통합을 꾀하며 기하학적 형식 논리를 정체에 투영함으로써 종교를 세속화하였으나, 체제의 불안정성이 심화될수록 합리적 인간은 다시금 종교성 - 우상을 향한 맹목적 열정 - 에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