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광주항쟁이 있었습니다. 저는 광주에 살았고 5월18일 광주항쟁이 시작된 날부터 27일 새벽 도청이 함락될 때까지 다 지켜보았습니다. 80년 5월을 얘기하면 저도 모르게…(이때 그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도청이 함락되던 그 마지막 날 26일 저는 도청 앞 수협 건물에 있었습니다. 시민군이 함락되고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들고 있던 총을 버리고 도망갔어요. 당시 죽어갔던 사람들과 총을 버리고 도망갔던 나. 그것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서도 학생운동을 한 것입니다. 이후 85년에 사건에 연루됐고 고문을 받고 거짓 자백을 하고, 교도소에선 계속 잠만 잤어요. 그렇게 3~4개월이 지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 정권에 굴복해서 거짓 자백을 하고.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80년 5월에 총을 버리면서 절대 다시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5년이 지나서 또 이렇게 해버린 것이야?’ 그런 내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광주에서 죽어간 열사들과 제 모습이 겹치면서 영혼과 정체성이 다 망가져버린 거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버린 나, 전두환 정권의 요구대로 방송에 나와 주절거렸던 나, 권력에 시중들며 짓뭉개지고 쓰레기통에 처박혀버린 내 영혼. 그것을 일으켜세우고 싶었어요. 거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전향하지 않겠다고, 이 사건은 조작이라고 선언하는 것뿐이었죠.”
“유토피아는 “아무 것도 아닌” 준법서약서 한 장 못 쓰고, 아들을 기다리는 칠순 어머니에게 “오래 사셔야 돼요.”라고 말하는 내 동갑내기 장기수의 영혼 속에, 사람들이 ‘미망’이라 비웃는 그 고결한 영혼 속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