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인들의 인간 이해에서 핵심은 삶에서의 탁월성이었다. 그런데 이 ‘탁월함’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레테’는 나중에 미덕(virtue)으로 번역됐지만 겸손이나 사랑같은 기독교적 개념이나 의무의 준수같은 스토아적 이상과 무관하다. 그것은 신들과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감사와 경외의 느낌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인간들은 누구나 신들을 필요로 하니까요”라는 게그들의 세계관이었다. 즉 인간의 탁월한성취를 그들은 인간의 공이 아니라 신의 특별한 선물이라고 보았다. 심지어 호메로스는 잠든다는 것조차도 우리가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성스러운 행위로 간주했다.한마디로 경이와 감사로 가득 찬 세계다. 하지만 니체의 말대로 “우리 스스로 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늘날은 어떤가. 저자들은 계몽주의가 형이상학적 개인주의를 받아들인 것이 서양사의 가장 극적인 전환이라고 말한다. 결과는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모든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율적인 개인을 이상으로 내세우면서 우리는 우주에서 유일한 행동 주체가 됐다. 인간이 자기 실존의 핵심을 통제하기에 불충분한 존재로 파악한 호메로스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관점이다. 저자들은 칸트의 자율적 인간이란 이념의 자연스런 귀결이 니체의 허무주의라고 본다. 이것은 일종의 막다른 골목이다.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모든 놀라운 일들에 대해서 닫혀 있기 때문이다.”(이현우)

2. “랍비 부남은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누구든지 두 가방을 가져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 둘 중의 하나를 잡을 수 있도록 말이다. 오른쪽 가방에 있는 다음의 말이 중요하다. ‘나 때문에 세상이 창조되었다.’ 왼쪽 가방에 있는 다음의 말도 중요하다. ‘나는 흙이며 재이다.’”(도로테 죌레)

3. “사는 날이 더해질수록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앎이 어찌나 긴요한지, 우리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앎이 어찌나 필요한지. 인간사의 제 문제는 이 둘 사이의 모순을 껴안는 대신 한쪽을 취하고 다른 한쪽을 버리기 때문에 생긴다.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건대 영성은 두 극단 사이의 봉우리를 오르거나 두 극단 사이의 골짜기를 흐르는 것이다.”(박총)

4.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이와 모순되게 보이나 인간의 불가능성도 무한하다. 이 양자 사이에 그의 고향이 있다.”(게오르그 짐멜)

* 신비와 저항과 선포 _ 영적이나 종교적이지 않은 자기계발의 시대에 사상사적 전환기의 고전을 통해 조망하는 자기함몰성의 역사, 거시적 사태의 미시적 원인에서 미시적 사건의 거시적 구조로의 전환을 위한 마음의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