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는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인물과사상사)에서 ‘유교 윤리의 지배 시대가 파산에 이르게 된 분기점은 과연 언제였을까?’라고 물은 뒤, ‘[갑오개혁(1894)이 시작된 해부터 아관파천(1896)이 벌어진] 채 2년도 안 된 그 기간을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본다’라고 썼다. … 아관파천이 일어난 다음 해인 1897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토지>는 신소설의 특징인 공동체의 분해와 범죄자의 음모가 줄기를 이루며 주요 인물 가운데 악질 친일파도 빠지지 않는다.”

* 1895년 을미사변 당시 이완용은 친러파였다. 강자를 따르는 것이 해법이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조선인은 근대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