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바울의 말에서 우리는 로마와 헬라인의 사유 구조에서 본 복음은 부끄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당대의 그리스도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복음을 부끄럽게 여겼다는 현실을 읽어낼 수 있다. 2천 년 기독교 역사는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이는 복음을 당대의 지성적인 틀에 맞추어 그 거칠고 투박한 면을 세련되게 만들어 넓은 길을 걸었음을 보여 준다. 복음의 미련함을 멸시하는 자들의 시각을 틀로 삼아, 뉴비긴이 즐겨 사용하는 피터 버거Peter Berger의 용어로 하자면 ‘타당성 구조’로 기독교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고 읍소하는 전략은 복음의 본질과 신앙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그분의 십자가를 프리즘으로 삼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계시와 구속의 경륜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비라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요체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제약에 갇힐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 해석하겠다고 달려들고, 또 그런 식으로 기독교를 변호하려는 시도는 터무니없는 우상 숭배에 지나지 않는다. 뉴비긴은 각 시대의 지배 질서와 타당성 구조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고서도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하는 길을 제시한다. 이것이 뉴비긴을 읽어야 할 두 번째 이유다.”(김기현)
*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ryre와 폴라니Michael Polanyi에 의존하여 당대의 타당성 구조Plausiblility Structures에 균열을 가함으로써 포스트모던 시대에 ‘진리’를 하나의 선택지로 고려할 것을 변증한다. 이 방식에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