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모든 종류의 종교적, 정치적 예언들에 대한 지속적 투쟁이 이루어졌다. 국가는 묵시론적이고 점성술적인 미래 해석을 억압하면서 미래를 독점하려 했다.”
“1670년에 스피노자는 가장 철저하게 예언을 비판했다. 그는 종교적 비전이란 당대에 명망을 얻고자 하면서 국가를 위협하는 정파들이 흔히 사용하는 핑계거리라고 몰아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성경의 예언자들조차도 원시적 상상력의 희생자들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역사철학이야말로 근대 초기를 과거로부터 단절시키면서 새로운 미래와 더불어 … 근대를 열었던 장본인이다. … 합리적 예측과 구원을 확신하는 기대의 혼합은 18세기의 특성이었고 이것은 진보로 이어졌다.”
근대 역사철학의 정초자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다음과 같은 단언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다: “우리의 시대는 탄생의 시대요. … 정신은 지금까지의 정재와 표상의 세계와 절연하고 … 결코 정지하지 않고 항상 전진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고대의 순환적 시간 개념, 중세의 종말론적 시간관을 폐기하고 성립된 근대의 미래 구상은 합리적 예측과 역사철학에서 표상되었다.”
“혁명(revolutio)은 본디 하나의 순환, 정체(政體)의 순환, 자연적 순환에의 종속임을 의미했고, 이것이 정치세계에 적용될 때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어떤 것이 나타날 수 없음을 함축하였거니와, 이러한 용법에서 혁명은 고대법의 복원, 진정한 정체로의 회귀를 가리켰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새로워진 1789년 이후 이 용어는 혁명적인 의미 변화를 겪으면서 역사철학의 핵심 술어로 자리잡는다. “장기간에 걸친 사건이나 특히 갑작스러운 정치적 사건에 대한 의식적 은유”이건 “미래를 인식하고 장악하는 것”으로서의 유토피아적 전망이건 혁명은 구원을 확신하는 기대가 즐겨찾는 술어가 되었다.”
“자연과학적 시간에 바탕을 두었다는 합리적 예측과 종말론의 근대적 변형판인 역사철학의 혼합, 이것이 종교를 폐기한 근대의 정치를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