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날과 같은 산업 문명이 등장하는 데는 석탄, 석유와 같은 비인간(사물)에 대한 의존은 필수 불가결했다.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 없이는 단 한 순간도 문명을 지속할 수 없는 처지면서 무슨 자연으로부터의 해방, 비인간/인간의 분리를 얘기하는가? 오히려 우리는 지난 수백 년간 비인간-인간의 잡종(하이브리드)을 엄청나게 양산했다. 그 결과 나타난 결과가 바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생태 위기다. 이 책을 처음 썼을 때도 이미 심각했던 생태 위기는 최근의 (화석연료의 산물인) 온실 기체가 초래하는 지구 온난화에서 알 수 있듯이 더욱더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근대화, 서구화 같은 개념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고자 내세운 용어가 바로 ‘비근대주의’다. 그러나 이 용어 역시 (’근대주의’에 강하게 결박된 탓에) 앞에서 설명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는 미흡했다. 최근에 내 입장을 ‘컴포지셔니즘(compositionism)’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모더니즘도, 포스트모더니즘도 아닌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데 그것을 뭐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우리가 한 번도 근대였던 적이 없는데, 근대의 다음을 뜻하는 탈근대 자체를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닌가?”

2. “들뢰즈는 철학에서 비인간(자연)을 다시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아주 훌륭한 철학자다. 그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는 지금 현재 진행 중인 나의 연구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하다. 그와 나는 가브리엘 타르드 그리고 알프레드 화이트헤드의 사상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3. “나는 세계화를 믿지 않는다. 흔히 세계화라고 부르는 현상은 수많은 지방화가 네트워크를 통해서 확장하는 것일 뿐이다. 도대체 ‘글로브(globe)’는 어디에 존재하나? ‘글로벌(global)’은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착각에 빠뜨리는 위험한 개념이다. 흔히 ‘전 지구적 관점(global perspective)’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거짓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provincial)에 갇힌 좁은 시각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통찰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학자는 독일의 페터 슬로터다이크다. 그는 글로벌이 아닌 지방 차원의 ‘상호 연결(interconnectedness)’이라는 올바른 개념을 만든 유일한 학자이다. 그에 따르면, ‘글로벌’ 개념은 마치 물고기(인간)가 헤엄치는 거대한 수족관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사실 인간은 작은 연못에서 헤엄치는 존재다. 이들 연못 중 일부는 연결돼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