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사법시험 출신들이 사법연수원 제1기생이 되었기 때문에 사법시험 횟수와 사법연수원 기수 사이에는 10년의 차이가 있습니다.”(116)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는 순간, 저는 법원에 소속된 5급 공무원으로서 신분을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사법연수원 1년을 마치고 2년차가 되면서는 직급이 다시 올라가 4급이 되었습니다. 보통 행정고시에 합격한 사무관이 4급 서기관이 되는 데 10여 년이 소요되는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승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모두 판사와 검사가 3급의 예우를 받는 데 따른 것입니다.”(118)

“주변의 총각들이 하나씩 여유 있는 집에 장가 가서 좋은 집과 자동차를 장만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그 친구가 그럴 줄 몰랐다’며 한탄했지만, 은연중에 ‘나도 그 정도는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싹터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혐오 속에서 내면화되는 특권의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서서히 내면화되는 특권의식과 함께, 늘 1등을 지향하는 수재들은 법조계 내부를 지배하는 몇 가지 논리에 순응해가기 시작했습니다.”(121) “이런 법조계 분위기 속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향한 삶을 시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몸을 던진’ 변호사의 삶은 법조계 내부의 논리에 따르자면 ‘그저 공부를 못해 판검사 임용을 못 받고(제1논리), 그러다보니 실력도 못 갖춘 사람이(제2논리), 어떻게든 뜨려고 발버둥치는(제3논리)’ 것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할 당시 한결같이 그런 삶을 지향했던 사람들이 모두 다른 길로 가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 처음에는 그 현실에 저항하던 사람들도 연수원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가운데 점차 전형적인 법조인의 모습으로 변해가게 됩니다.”(125~126)

“토론 과정에서 초강경파들만 힘을 얻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마침 그 당시 읽고 있던 김태길 교수의 <체험과 사색>의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서울이 북한군에게 점령된 뒤 대학생들이 분위기에 맞서지 못하고 의용군에 자원하는 부분이었지요. 그렇게 자원하여 평양까지 끌려갔다 온 김태길 선생처럼 저도 같은 상황이 되면 꼼짝 없었으리라는 자탄을 했습니다.”(131)

“117명을 전원 퇴교시키고 이 사건을 신문 기사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젊은 구대장 한 명은 이후 ‘군 생활이 싫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이 특권집단이 가진 힘과 현실의 벽이 너무나 높았던 셈입니다.”(133)

“법은 기본적으로 국가를 통제하기 위한 것 … 법이 국가를 통제하기 위한 도구라면, 법률가들은 바로 그 법이 올바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법전 속에서 잠자고 있는 법이 우리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쉬며 국가의 괴물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손발 역할을 하는 것이 법조인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를 통제해야 할 법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시민의 이익 대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게 되었을 때 우리 사회의 정의가 무너지게 됩니다. … 맡겨진 역할 수행을 포기한 채,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된 법률가들은 결국 괴물의 수족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136)

* 김두식, <헌법의 풍경>, 교양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