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1835. 1. 3~1867. 11. 15)는 도사번(土佐藩)의 향사 아들로 태어났다. 열네 살 되던 해, 에도(江戶)의 한 도장에서 검술을 익히며 왕정복고와 서양문물을 거부하는 존왕양이(尊王攘夷) 주의자들과 만나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검술을 익히고 고향으로 돌아간 료마는 존왕양이를 실천하기 위해 결성된 도사근왕당(土佐勤王黨)에 가담하여 친서양파인 가쓰 가이슈(勝海舟)를 죽이기 위해 다시 에도로 향했다. 그러나 “일본은 외국의 발달한 지식과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가이슈의 설득에 큰 감동을 받게 됨으로써 그의 제자가 되고, 그의 영향으로 무역의 필요성을 느껴 고베(神戶)에 해운무역회사를 설립했다. 후에 이 해운회사는 해군지원대로 바뀌어 운영되었다. 1866년에는 대립관계에 있던 사쓰마번(薩摩藩)과 조슈번(長州藩)의 동맹을 이끌어내고, 그 이듬해에는 마침내 막부(중앙)와 번(지방)을 통일시켜 천황에게 국가 통치권을 돌려준 역사적인 사건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성사시키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일본은 약 675년 동안 지속되었던 봉건시대가 막을 내리고, 메이지유신을 통해 중앙집권적 근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1867년 11월 15일 친구인 나카오카 신타로(中岡愼太郞)와 함께 막부의 한 순찰대에게 습격을 받아 교토에서 33살의 나이로 암살되고 만다. 시골의 하급무사에서 격변의 시기에 시대의 중심으로 들어가 일본을 변화시킨 사카모토 료마.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