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순백의 통제되지 않은 열정인가.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하도록 방치한 것은 아닌가. 그것의 변호는 어떠한 심성에서 비롯된 것인가. 동의인가, 오해인가, 기만인가. 원칙 없는 자율성은 혼돈이거니와 그것의 폐해는 공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옹호할까. 주위의 무기력한 소홀과 이기적인 나태, 태부족한 인정 때문인가. 그래서 반동에서 울컥한 희망을 본 것인가. 1450년 포르미니 전투의 감격은 울분의 신성화로 쟁취하였으나 여전히 납득되지 않은 동맹이다. 그러기에는 리스크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