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뜻에 관한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Gerald L. Sitter의 The Will of God as a Way of Life: Finding and Following the Will of God이고, 다른 하나는 Henrry T. Blackaby의 Experiencing God: How to Live the Full Adventure of Knowing and Doing the Will of God이다. 양자 모두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 제랄드 싯처의 “오늘, 여기서, 그분을 위해”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과 동행”으로 환언할 수 있는가. 블랙가비의 조언은 답변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당신은 경험만으로 인도되도록 자신을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은 전통, 방법, 공식 등으로 인도되도록 허락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 쉽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의지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좋을 대로 일을 해놓고 모든 것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3. 우리는 시대의 한계 속에서 현재의 렌즈로 하나님의 뜻을 재단하고 추구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행하는 열심은 숨겨진 섭리의 실현이 아니다. 물론 “계획하는 것이 무조건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원하시는 것 이상의 계획까지 세우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언제라도 원하시면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에 간섭하시고 진로를 조정하시도록 허락하십시오.”

4.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언제나 이미 순종을 요청한다. 이것은 부단한 혁신이자 자기부인이다. 종종 하나님의 뜻을 언급할 때 일반계시 내에서의 자유를 강조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의적 해석은 시정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지(will)와 기호(like)의 구별이 선행되어야 한다.

5. 선택에 방점을 두면 하나님의 뜻은 기호의 영역으로 환원되어 모호해지고 우리는 길을 잃고 만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은 성서에 계시된 일종의 도덕률로 치부되고, 각자의 욕정이 시대의 자장 가운데 제 스스로 부여한 명분과 결합되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으로 올라선다.

6.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 이것은 치명적인 오류를 내포한 비문이다. 지향의 전환. 주체와 객체의 전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어떻게’에 치중함으로써 나의 영광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요, 나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림으로써 소명에 부응하였다고 오인하게 된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없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각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바에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관건이다.

7. 그럼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는가. 제랄드 싯처의 <하나님의 뜻>이 그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역설을 모순으로 남겨 두었다면, 헨리 블랙가비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은 모순이 역설이고 성화가 삶의 조정임을 자각하도록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