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스럽게 들릴지 모르나, 선거 그 자체는 민주적인 제도가 아니다. 애초 선거는 귀족정을 뒷받침했던 대표 선발 제도였고, 순수 제도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상층 편향적인 효과를 가진다. 투표자와 선출된 자 사이에 아무런 매개 없이 선거가 치러진다면 특출한 후보가 선호되고 그런 특출함은 교육과 재산 등의 이점을 통해 만들어진다. 엘리트(elite)라는 말이 선거(election)와 같은 어원을 갖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대의제 역시 그 자체로 민주적인 제도가 아니다. 대의제의 역사적 기원은 중세에 있다. 그렇기에 당시의 역사 속에서 삼부회나 신분의회와 같은 대의기구는 물론 선거를 통해 뽑히는 왕과 제후의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런 대의제와 선거가 민주적인 제도가 된 것은, 귀족이 아닌 가난한 보통사람들도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고 그 기초 위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열정을 조직할 수 있는 결사체를 만들 수 있게 된 후였다.”

“정치가 결사체적 기반을 상실하고 개인화될수록 사회는 불평등해진다. 민주주의는 시민을 위한 시민의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져서가 아니고, 갈등하는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다원적 결사체들이 사회적 균형을 형성할 수 있을 때 좋아진다. 비정규직이든 빈곤층이든 그들이 향유해야 하는 결사의 자유와 교섭 능력이 좋아지는 것 없이, 제아무리 개인적 야심 없는 정치가를 선출하고 그들이 시민을 위한 행정을 펼친다 한들 사태가 개선되지는 않는다. 우리사회의 경험을 돌아보더라도, 그간 복지예산은 계속해서 늘었지만 빈곤과 불평등 문제는 악화됐다. 정규직으로의 전환 사례는 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비정규직 문제는 더 나빠졌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관련 제도도 확장됐지만 한국경제가 자유롭고 공정해지지는 않았다. 무상급식도 실시되고 학생인권조례도 만들어지고 대안학교나 혁신학교와 같은 실험이 있었지만 교육문제가 좋아진 것도 아니다. 아마 앞으로도 서민을 위하고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빈곤층과 약자를 대변하겠다는 정치가들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책의 수요자로서 이해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조직할 권리는 강화되지 않은 채 정책의 공급자가 갖는 선의만 앞세워진다면, 그것이 온정주의일 수는 있어도 민주주의와는 관련이 없다. 온정주의는 오히려 권위주의의 다른 얼굴일 때가 많다.”

_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박상훈(경향신문, 2014.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