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이후 나는 변했다. 그때까지 나는 종래의 마르크스주의적 정당이나 국가에 대해 비판적이었는데, 그 비판은 그들이 계속해서 강고하게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었다. 그들이 존속하는 한 단지 그것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무언가를 했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그들이 붕괴했을 때 나는 역설적이게도 나 자신이 그들에게 의존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뭔가 적극적인 것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칸트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그때부터였다.”(18~19) “1990년까지 나는 적극적인 말이라면 어떤 발언도 할 수 없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 후로 자본제 경제나 국가에 대한 계몽적 비판 또는 문화적 저항에 머무르는 데 만족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려 하는 과정에서 칸트를 만났다. … 나는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이론을 제출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전의 책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이론을 제출할 때는 그것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누구도 트집을 잡을 수 없는 범위에 그친다면 아카데믹한 책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만족할 수 없었다.”(柄谷行人, 2001[2005]: 12)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면 두 형제가 혁명에 성공한 이후에 노선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 형이 아우를 죽이잖아요. 그때 ‘우리가 적과 싸울 생각만 했지, 우리가 만들 세상은 생각해보지 않았다’라는 말을 하는데요. 쓰신 글 가운데 ‘내 밖의 적과 싸우는 일을 혁명이라 하고, 내 안의 적과 싸우는 일을 영성이라 할 때, 역사 속에서 혁명과 영성의 편향은 번갈아 나타난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그 영화가 떠올랐어요.”(지승호/김규항, 2010: 213)
* 비판의 한계를 좌파연하는 언론에 기고하고 싶었으나,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음을 새삼 인지하고 깊이 반성한다. 존 오웬을 다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