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삼상 16:14) “여기서 나오는 ‘번뇌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 원어로 보면 ‘무섭다’라는 기본 의미에서 ‘두려워하다’는 의미가 파생하는 단어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사울은 전쟁마다 승리하고 이끄는 대단한 왕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 독재자 히틀러는 침실이 여덟 개였는데, 그중  어디에서 잠을 청할지는 그 외에 아무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최고 권력자인 그였지만 그 안에는 암살당할지도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내면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세계를 장악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내적 평화이다. … 지금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 실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자. 본래 마음이 여리고 약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 영적인 문제는 아닌가? 우리는 바로 그것을 점검해야 한다.”(139)

“왜 예배에 뜨거움이 없어진 걸까?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감격이 없기 때문이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잊은 채 자신의 힘으로 버티며 살다가 주일 겨우 교회에 나와 예배하는데, 무슨 감격이 있겠는가? 감격 없이 교회에 나오기 때문에 예배의 뜨거움도 당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A. W. 토저의 <예배인가, 쇼인가>를 보면 예배를 이루는 몇 가지 요소가 나오는데, 그중에 첫 번째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감탄’이다. 이 감탄이 예배를 예배답게 만든다. 다음은 토저 박사의 말이다.” “예배하지 않고 감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감탄 없이 예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감탄의 감정이 극대화되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이다.”(145) 

* 이찬수(2012). <일어나라>, 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