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처절히 깨달은 실패야말로 축복입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자신에 대한 좌절이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래야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이 복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주님, 저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죽었습니다.’ 그것밖에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백을 한 열 번쯤 했을까요? 내게 죽음이 임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죽음은 내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죽었다는 고백을 하자 미움도, 섭섭함도, 억울함도, 괴로워 죽겠다는 마음도 순식간에 다 사라지고 정말 놀라운 평안이 임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죽는 것은 힘든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힘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내가 나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죽음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우리는 우리의 죽음을 선물로 받습니다. 어떻게 언제 받습니까? 내가 주님을 영접할 때, 죽음은 내게 주어집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나면 그 다음에는 죽었다, 안 죽었다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죽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는 것은 목적이 아닙니다. 내가 죽는 것은 시작입니다. 내가 죽어야 비로소 주님이 내 삶을 통하여 주님의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것인 내게 이미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복음을 주셨습니다.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되는 것처럼 순종이 됩니다. 바로 ‘나는 죽었습니다’가 완전한 순종입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다시 십자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러면 순종하지 못할 장벽이 모두 무너집니다. ‘나는 죽었습니다’로 하는 순종이 진짜 순종입니다.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쉽고 편안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다가 때때로 힘들어질 때가 온다면 이유는 하나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역자들이 지치고 메말라지는 일이 많습니다. 열심히 사역하다가 무너지고 시험에 듭니다. 이유는 사역이 힘들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사람은 버려진 가지처럼 마릅니다. 우리가 사역을 하다보면 일은 하는데 주님 안에 거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일을 뒤에서 섬기는 일꾼들이라면 항상 주님 안에 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분들은 행사를 치르게 됩니다. 파티 플래너가 됩니다.”

“저는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을 깨달으면 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깨달아야 할 것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설교자가 전하는 말씀 그대로 살 수 있는가?’ 답은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면 말씀대로 사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 복음의 핵심이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산다’는 데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프랭크 루박 선교사님의 고민은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는데 왜 내 삶 속에서 역사하지 않으시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시고 나와 함께 계신 것을 알지만 자신에게 주님과 함께하는 분명한 체험이 없다는 그의 고민은 우리가 가진 고민과 같습니다. 안 믿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삶 속에서 주님의 임재를 항상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닌 그런 삶에서 나온 고민입니다. 그는 1930년 1월 1일부터 결심을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고 나를 보고 계신다면 나도 하나님을 바라보아야겠다. 나도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보자.’ 그리고 결심한 것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앤드류 머레이에게 물으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어떤 존재냐?” “언제나 첫째이십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 내가 대답을 잘못했구나.’ “주님, 주님은 저에게 모든 것이십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첫째’라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도 기쁘지 않은 것입니다. 실제로 첫째도 있고, 둘째도 있고, 셋째가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사랑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랑은 마음입니다. 마음에 항상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연애하면 자꾸 그 사람이 떠오르고 어떻게 해서 즐겁게 해줄까, 어디서 만날까 늘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공부도 안하고 잠도 안 자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은 똑같이 하지만 마음의 주인이 언제나 그 사람인 것, 그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그렇게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주님의 제자가 누구입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사랑만 하며 사는 축복이 주어진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예수를 제대로 믿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척도입니다.”

* 유기성(2012).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