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우] 우리나라에서는 재벌 개혁을 하자고 하면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얘기가 바로 나온다. 삼성이 망하고 나라가 망한다고 반발한다.

[홍종학] 보수층이 우리나라 경제사회 시스템을 영미 국가형으로 만들었으니 재벌 개혁 역시 영미식으로 해야 한다. 미국도 재벌의 영향력이 강한 시대가 있었다. 190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약 20년인데, 당시 상황이 지금 한국과 유사했다. 거대 재벌이 등장하는 1890년대 이후 미국 경제는 점차 재벌로 돈이 몰리게 된다. 그 결과, 1907년 경제위기에 직면한다. 당시 미국은 경제위기의 원인이 재벌에 있다고 보고, 본격적으로 재벌 개혁을 논의했다. 1912년 대통령 선거의 주된 이슈 역시 재벌 개혁이었다. 윌슨 대통령은 당시 캐치프레이즈로 ‘머니 트러스트(금권신탁) 개혁’을 내세워 당선했다. JP모건이 장악하고 있는 금융자본을 손질하겠다는 것이었다.

[주진우] 윌슨 대통령의 재벌 개혁 구상은 성공했나?

[홍종학] 그는 8년간 집권했지만 결국 재벌 개혁에는 실패했다. 그 여파로 윌슨이 물러나는 1920년부터 공화당이 세 번의 대선에서 연속 승리한다. 그때 공화당에서 펼친 정책이 지금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줄푸세’다. 자연히 재벌의 덩치는 커지고, 양극화는 심화됐다. 1929년 대공황도 결국 줄푸세 정책의 결과였다. 대공황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뉴딜’이라 불리는 대대적인 개혁 정책이 실시됐다. 대개 뉴딜 정책이 댐 짓는 사업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재벌을 완전히 분해하는 데 큰 힘을 기울였다. 대표적으로 금산분리 정책을 취했다. 그 유명한 ‘글래스-스티컬법’이다. 당시 미국 굴지의 기업들은 전부 JP모건의 통제 아래 있었다. JP모건은 은행·철강·철도·전기 등을 광범위하게 장악했다. 루스벨트는 은행법으로 이에 제동을 걸었다. 상업은행과 일반 기업을 서로 떼어놓고, 배당에 대해 세금을 물린 것이다. 은행이 일반 기업을 소유하고, 이 기업은 또 다른 기업을 소유하고 … 이렇게 사다리를 많이 쌓을수록 세금을 많이 부과했다. 뉴딜 정책과 세계대전이 맞물리면서 국가가 재벌을 통제한 결과, 미국의 재벌 시스템은 사라졌다.

[주진우] 장하준·정승일 등 일부 경제학자는 재벌 그룹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성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말이다. 금산분리 원칙까지 유예를 요구하는 듯하다.

[홍종학] 삼성 특별법에 찬성하는 경제학자들은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을 모델로 삼는다. 경영권을 인정해주고 공적인 기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국회에서 누가 동의하겠나. 여당에서는 동의할지 모르지만 야당으로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삼성 특별법은 엄연히 특혜법이다. 하나의 재벌, 특히 삼성그룹을 위해서 이미 세법은 많이 바뀌었다. 삼성그룹이 절세하는 방법이 밝혀지면 다른 기업이 따라하고, 이를 막으려고 법을 만들면 삼성그룹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내는 식이다. 세법 중에서도 특히 상속세법은 거의 ‘삼성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 때문에 변화했고 삼성 때문에 만들어졌다. 삼성 특별법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