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를 직영한 ‘~에의’ ‘~로의’ 같은 겹조사는 절대 쓰지 마세요. 10여 년 전 채영주라는 소설가가 작고했습니다. 어느 문학잡지에 그이에 대한 추도문이 실렸는데 제목이 “영주에의 추억”이었습니다. 이건 진짜 일본어투 표현입니다. ‘추억’을 동사로 바꿔서 “영주를 추억함”이라고 쓰거나 “영주 생각” 정도로 쓰느 것이 좋겠습니다. ‘~에 있어서’ ‘~에 있어서의’도 마찬가지로 일본어를 직역한 표현입니다. 저는 이런 표현을 들으면 숨이 콱 막힐 지경입니다. 특히 공부를 많이 했다는 학자들이 이런 표현을 많이 쓰는데, 외래어나 외국어식 표현에 어지간히 너그러운 저도 이 말은 보기도 싫고 듣기도 싫습니다. 한국에서 헤겔 연구를 가장 많이 한 철학자가 아마 임석진이란 분일 겁니다. 이분이 독일에서 쓴 박사학위 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해 출간했는데, 그 제목이 <헤겔에 있어서의 노동의 개념>입니다. 이건 최악의 한국어입니다. 원래 박사학위 논문 제목 을 직역한 것인데, 저는 독일어로도 이 제목이 좀 늘어지는 것 같아요. 저 같았으면 ‘Hegels Begriff der Arbeit’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헤겔에 있어서의 노동의 개념’, 이건 최악의 한국어입니다. 한국어답게 고치자면 뭐가 될까요? 우선 ‘에 있어서’ 이런 건 필요 없는 말입니다. 그 뒤의 ‘의’도 필요 없는 말입니다. ‘헤겔의 노동개념’이라고 쓰면 딱 맞습니다. 얼마나 깔끔해요? ‘헤겔에 있어서의 노동의 개념’과 ‘헤겔의 노동개념’, 과연 이 두 표현의 뜻이 다른가요? 똑같은 말입니다.”

* 고종석, <고종석의 문장>, 알마, 2014, 125~1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