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1차 세계대전이 1914년에 발발해서 1918년에 끝나죠? 그런데 러시아 혁명은 1917년에 일어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삼국협상 측과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 이런 나라들 사이의 제국주의 전쟁이었는데, 중간에 미국이 개입하면서 독일의 패색이 짙어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요. 독일은 유럽의 가운데에 있으니까, 여러 나라와 전쟁을 하면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서 동시에 싸워야 합니다. 이건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 독일 제2제국 황제였던 빌헬름 2세가, 정확히 말하면 독일 군부가 양쪽 전선에서 전쟁을 치르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한쪽 전선을 없애려고 공작을 기획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친 공작입니다. 독일 군부가 생각해보니, 프랑스 쪽 서부전선은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정정이 불안하니 동부전선을 없앨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러시아엔 혁명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아직 결정적 혁명이 일어나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프롤레타이라 혁명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2. “1917년 2월에 소위 부르주아 혁명이 일어났어요. 차르 체제는 폐지되고 공화국이 되긴 했는데 케렌스키라는 사람이 총리, 즉 수상이었습니다. 케렌스키는 혁명이 일어난 다음에도 계속 전쟁을 수행했어요. 이 사람은 나중에 러시아 10월혁명이 일어난 뒤에 미국으로 망명해서 고종명했습니다. … 케렌스키 정부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사형제를 폐지한 정부입니다. 심지어 군대에서 탈영한 군인들도 사형을 못 시키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2월혁명 이후 러시아는 어떤 측면에서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였어요. 인권에 관한 한. 어쨌든 케렌스키는 계속 독일이랑 전쟁을 합니다. 독일 측으로는 이게 부담스럽거든요. 러시아가 완전히 망가져야 동부전선에서 전쟁을 안 치러도 되는데, 2월혁명 이후에도 러시아는 독일이랑 전쟁을 계속하는 겁니다. 그래서 독일 군부는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도록 공작을 벌입니다.”

3. “그 당시 볼셰비키 지도자인 레닌은 스위스에 망명을 하고 있었는데, 레닌을 러시아로 들여보내야 이놈의 나라가 뒤집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서 레닌을 밀봉열차에 태웁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게, 독일 군부 내에서도 극소수 사람들만 아는 비밀작전을 수행합니다. 그래서 레닌이 탄 밀봉열차는 스위스에서 북쪽으로 쭉 올라가서 핀란드를 거쳐 러시아 국경을 넘어갑니다. 이 국경 부근에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가 있어요. … 스위스에 있던 레닌을 밀봉열차에 태워서 이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보냅니다.”

4.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레닌이 내린 역 이름이 핀란드역입니다. 그러니까 핀란드역은 핀란드에 있는 게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습니다. 그럼 왜 이 역 이름이 핀란드역이냐? 이 역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핀란드로 가기 때문이에요. 또 핀란드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이 역에 도착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역 이름이 핀란드역이에요.”

5. “독일 군부는 독일만이 아니라 어떤 이웃나라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았는데, 말하자면 굉장히 우익적 성격을 지닌 집단인데, 러시아와의 전쟁이 너무 힘겨우니까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도록 공작을 한 겁니다. 그래서 레닌을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기차를 태워서 보냅니다. 그리고 레닌의 지도 아래 러시아에서는 10월혁명이 일어납니다. 볼셰비키 혁명, 공산주의 혁명이었죠. 이 혁명 과정에서 트로츠키가 큰 전공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레닌은 혁명에 성공하자마자 독일과 정전협상을 합니다. 좀 굴욕적인 조건 아래서 정전을 해요. 땅덩어리도 좀 떼어주고. 그게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입니다. 레닌에게는 승전보다 혁명의 완수가 더 급했거든요. 그래서 이제 독일은 동부전선에서 걱정을 덜게 됐습니다.”

* 고종석, <고종석의 문장>, 알마, 2014, 384~3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