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책이 있다. 나에게는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그렇다. 첫 직장이었고, 내가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한 곳이다. 또한 학교에서 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곳이며 가장 많은 스승을 만났던 곳이다.” “사법연수원을 나온 직후부터 거기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선 모든 사람이 아래위 구분 없이 이니셜로 통했다. 나는 YSC였다.”

1. “의 ‘사람’ 욕심은 남달랐다. 늘 자신을 뛰어 넘는 인재들을 곁에 두고자 치열하게 노력했다. … 그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집요하게, 정성을 다해 설득했다. 부모님이 반대하면 직접 만나 설득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후배들에게 타인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것을 전파하기 위해 주말에도 늘 사무실에 나왔다. 전체 사무실을 돌면서 방에 있는 후배들을 몰고, 긴 점심을 먹으면서 왜 변호사들이 함께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앞에 나서는 법도 없었다. 김앤장에서 일했던 13년 동안 그가 시무식, 종무식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조금이라도 공식적인 자리는 다른 사람들의 몫이었다. 그는 철저히 겸손했고 칭찬받는 자리엔 항상 남을 앞세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은 유머감각이다. 긴장되는 순간, 치열하게 이해가 대립되는 속에서도 잃지 않는 명철한 유머가 그를 돋보이게 하는 장점이었다. 그의 유머는 좌중의 긴장을 쥐락펴락하곤 했다.”

2. “변호사님은 성실하게 준비해온 사람을 야단치는 법은 절대 없었다. 경험이나 감각만 믿고 ‘맨머리’로 회의에 들어오는 사람만 철퇴를 맞았다. … 그런 분으로부터 내가 ‘글쓰기’를 배웠다하면 민망할 정도로 배움을 폄훼하는 격이 돼버릴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쓰는 방법’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생각하는 방법’이었다.” ”방에는 늘 뾰족하게 깎은 연필이 가득 꽂혀있었다. 아주 급한 일이 아니면 그 자리에서 검토를 시작하셨다. 정독하는 속력으로 초안은 고쳐져 나갔다. … 조사나 접속사, 문장 부호, 문장의 마무리 같은 소소한 것만 고쳤을 때에도 그의 손을 거치고 나면 마술처럼 문장은 더 견고해졌다. 힘도 세졌다. 홀린 듯 그 과정을 지켜본 후 사무실로 돌아오면 나는 비서를 시키지 않고 내가 직접 타이핑해 수정했다. 그래야만 내 것이 될 것 같았다.” “그의 신랄한 꾸짖음이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자네나 나나 둘 다 변호산데 변호사가 변호사한테 법을 물어 보나?’라고 핀잔을 주시면서도 언제나 답을 주셨던 분이었기에, 나는 기를 쓰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