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대구사범학교 졸업생으로 영남이라는 지역적 헤게모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야겠다. 둘째, 일본 육사 등의 교육이다. 유교적인 것이 문(文)보다는 무(武) 쪽으로만 발전한 것이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을 닮았는데, 일본 육사의 체질이 그렇다. 셋째, 만주의 체험이다. 위(僞)만주국이지만 그 일면에는 ‘낙로건설’이라는 이상주의도 있었다는 점을 아예 묵살할 수만은 없다. 일본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가 그때 차관(장관은 만주족 허수아비였다)으로 경제건설 계획을 주도했다는 것도 요즘 상황과 겹쳐져 아이러니하다. 그런 배경과 함께 군의 역학이 작용했다. 6·25 전쟁으로 과대 팽창한 군, 그것을 장악한 만주군 출신 장교들, 여기에 일본 헌병정치 특별고등경찰의 유산이 전승되고 체계화된 것이 당시의 중앙정보부(현재의 국정원)다.”

“공화당이라는 정당으로 나타나기도 한 5·16 세력은 일단 역동성은 있었다고 본다. 요즘의 정당들과 비교해보면 훨씬 생동하는 정당이었다. 거기에는 혁명 동지인 김종필(JP)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3선 개헌이나 유신 없이 그런 승계구도가 되었더라면 한국의 정치사는 진일보했을 것이다.” _ 남재희(전 노동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