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철학자들이 서양 철학의 견습생으로 그치지 않고서 자신들의 철학 전통을 만들어낸 것은 암흑기인 쇼와 전기(1925~1945)이다. 특히 니시다 기타로, 와쓰지 데쓰로, 미키 기요시, 구키 슈조는 이른바 ‘교토 사철(四哲)’로 불리는 거장들이다. 교토 큰 서점의 철학 코너에 가면 이들을 위한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일본 철학자들은 각자의 전공에 상관없이 이들의 사유를 연구하거나 최소한 언급하곤 한다. 요컨대 니시다 기타로와 교토 사철은 현대 일본 철학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니시다 철학의 주제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참조해 말한다면 ‘고뇌를 넘어 환희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니시다는 “철학의 동기는 비애의식(悲哀意識)이다”라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 니시다는 그의 삶에서 많은 죽음들을 목격했다. 여린 소년 시절에 각별히 사랑하던 누나의 죽음을 경험했고, 후에는 그의 삶의 대들보였던 어머니의 죽음은 물론 세 명의 자녀들(장남과 차녀, 오녀)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으니(여기에 처와 사녀는 밤낮 침상에 누워 지내는 병자였다), 이런 사람이 비애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하겠다. 게다가 니시다는 사회생활에서도 기구해서 갖가지 부조리와 차별, 냉대, 서러움을 겪기도 했다. 인생 후기의 교토대학 교수 시절은 그나마 비교적 평온했지만, 그의 삶은 고뇌와 비애의 연속이었다. 니시다는 자신의 생에 찾아온 이런 시련들을 철학으로 극복하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니시다 철학’이 탄생했다.”

_ 이정우, 2012.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