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홉스의 정치론을 이야기해 보죠. 먼저 염두에 둘 것은 홉스가 갈릴레이의 자연철학(물리학)적 관점을 유물론적 세계관으로 확대, 해석했다는 점입니다. 그에 따르면 존재하는 것은 물체(body) 밖에 없고 이것을 지배하는 원리는 운동(motion)입니다. 돌이나 나무, 공이나 비행기를 우리는 물체라고 부릅니다. 사람이나 동물도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동일한 물체이고, 의지가 개입된 운동을 한다는 점에서, 예컨대 공이 날아가는 것과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홉스에 따르면 ‘국가’라는 것도 인공적으로 만든 거대한 물체입니다. 따라서 운동의 원리는 돌이나 비행기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도 적용된다고 본 것이죠. 이것을 홉스는 매우 일관되게 그리고 철저하게 적용합니다.” ”근대 물리학자들은 운동을 두 가지의 힘, 즉 당기는 힘인 인력과 밀어내는 힘인 척력으로 설명합니다. 홉스는 이 원리를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는 데 적용합니다. 존재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을 욕망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기피하는 것, 이 두 가지 정서 사이에서 인간의 구체적인 행동이 생긴다는 것이죠. 욕망과 기피 또는 희망과 두려움, 이 두 가지 정서가 인간을 지배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운동의 추동력일까요? 홉스는 이것을 ‘endeavour’(라틴어 conatus)라고 불렀습니다. ‘노력’, ‘추구’, ‘욕구’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경향을 말하는 것이죠. 물리학에서 관성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죠. 이러한 경향을 스피노자는 홉스와 비슷하게 “현재 상태에서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경향)”이라고 불렀습니다. 요컨대 지극히 작은 소립자에서 천체에 이르기까지, 아메바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는 존재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고 자기 자신을 보존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홉스는 물체, 인간, 사회를 이 ‘자기 보존’의 원리에서 보자고 제안하죠. 이 점에서 스피노자는 홉스의 후예였습니다. 인간은 지성과 의지를 가졌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되지만 이것조차도 결국은 자기 보존 욕구라는 가장 기본적인 운동 원리를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면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운동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자리(토포스)를 갖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연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은 연기의 자리가 하늘이기 때문이고, 돌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돌의 자리가 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운동은 모두 자신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고향에 머무는 것, 곧 정지 상태에 있는 것이 운동보다 훨씬 가치 있고, 모든 존재물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 목적(텔로스)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은 궁극적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불행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고백록> 1권 1장에서 그는 “당신께 이르도록 우리를 지으셨기에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불안합니다”(quia fecisti ad te et inquietum est cor nostrum, donec requiescat in te)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텔로스, 즉 우리가 이르러야 할 궁극적 지점은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지상의 삶은 이런 의미에서 궁극적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끊임없는 운동입니다. 하나님께 이르러(ad te), 하나님 안에서(in te) 쉼을 얻을 때 비로서 안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홉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삶은 운동이다(Life is motion). 살아 있다는 것은 하나의 욕망에 덧붙여 또다른 욕망을 갖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근대적 사고입니다. 그칠 줄 모르는 운동, 끊임없는 진보, 이것이 근대 문화를 만들어 놓았다면 지나친 말일까요?”

_ 강영안,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