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rategies for university students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20대들의 암울한 경제현실에 대한 뉴스들은 무척이나 안쓰럽다. 그 이유는 이들의 문제에 “힘든데, 딱히 어떻게 할 수도 없다”는 상황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이상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식으로는 ‘지금 여기’의 20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위로는 “나도 아픈 적 있었다. 그런데 이겨냈다. 그러니 너도 이겨낼 수 있다”는 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이겨내기 위해 아파야 하는 경험’자체가 다른 20대의 현재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즉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20대의 구체적인 경험을 감당하지 못한다. 20대가 현재 한국사회의 핵심이슈가 되는 이유는 아무리 자기계발을 해도, 그리고 자신의 몸과 시간을 잘 관리해도, 이런 노력들이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20대에게 바라고 있는 것, 또 20대가 경청하는 말은 “핑계되지 말고 자기계발 하라!”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그러한 자기계발을 수행하더라도 이 불안한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20대들은 일련의 위기를 자기계발 담론을 받아들여 모면하고자 하나 그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살고 있다. 이 연구의 가장 기초적인 문제의식은 이로부터 출발한다. 왜 20대 스스로가 사회구조의 문제를 아랑곳하지 않는 “젊으니까 괜찮아!”라는 위로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을까?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거시적 환경에서 본다면 이는 ‘현대사회와 개인’의 과거와는 달라진 관계와 관련된다. 현대사회의 개인은 상황에 따라 기회를 노려야 하는 자기파괴적인 ‘시달리는 자아’로 살아가고 있다. 긍정과 희망으로 포장된 현대사회의 자기계발 열풍은 이런 개인이 되길 희망하는 사회적 강요의 결과이다. 이러한 사회적 담론으로 인해 모든 책임은 개인의 몫이 되며, 그래서 현상을 야기한 구조에는 누구도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 20대를 둘러싼 환경 역시 마찬가지다. 참담한 현실만이 강조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20대들은 스스로조차 본인들을 구조의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구원의 대상’이라고 이해한다. 이 상황이 누적되면 20대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변혁’보다 ‘일단 살고 보자’는 모티브를 구축한다. 이런 ‘결여의 대상’이 된 20대가 그 해결로서 자기계발 수행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거시적 환경에 반응하는 미시적 개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 연구는 20대 대학생 집단에 대해 귀납적 접근을 시도하여 “마치 운명처럼 강요되는 자기계발의 실천논리가 이들에게 긍정적으로 구축되고 재생산되는 경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38개월간의 현장연구를 바탕으로 찾고자 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온갖 모순된 사회구조적 도가니에 놓인 20대들이 이 자기계발 담론을 역시나 자율적으로 수용하는 과정, 정확히는 수용해야만 하는 이유에 주목했다. 나는 불안한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20대를 위로한답시고 이들의 불쌍한 모습을 밀착 취재하여 동정어린 현장을 제공할 생각이 결코 없다. 내가 포착한 것은 암울하기 그지없는 승자독식 한국사회에서 더 ‘암울하게’ 변해버린 20대의 자기계발 유인 경로다.”
“확인 결과, 20대들은 생존을 위해 자기통제형 자기계발을 선택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는’ 일상 속에 스스로를 놓이게 했다. 이로부터 20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한다. 그래서 이들은 대외적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 일관성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20대에게 비정규직이라는 지위적 다름은 동일한 시간을 어떻게 소비했느냐에 따른 객관적인 보상의 문제영역에서 해석된다. 이처럼 20대가 ‘시간관리’의 측면에서 현상을 규정하는 것은 그렇게 해야지만 스스로의 위치가 보장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문제를 이해하는 20대의 속성은 동년배 집단 내부에서는 놀랄만한 멸시형 학력주의에 대한 집착으로 드러났다. 20대는 이를 정당한 욕심으로 이해했다. 이들은 수능성적에 따라 멸시 받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멸시하는 것은 정당하게 합리화한다. 그런데 20대는 이렇게 자신을 멸시하는 사람을 이겨보고 싶다. 이들에게 그것은 수능점수로 만들어진 대학(학과) 서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유명한 회사에 취업해서 스스로의 위치가 낮지 않았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각오로 나타난다. 이런 ‘와신상담’을 꿈꾸며 20대는 취업용 스펙을 확보하기 위한 자기계발을 시작한다. 그렇게 자기통제가 시작된다. 또 20대는 자신이 멸시한 사람이 수행할 마찬가지의 자기계발 모습에 위협을 느끼고 자신의 위치를 ‘절대고수’하고자 스스로를 엄격하게 통제한다. 결국 자기계발의 자기통제성만 계속 ‘강화’되며 이로부터 20대의 시야가 형성된다. 20대들은 단순히 ‘순간적인 상황 모면’을 위해 특정한 직업군을 무시하고 수능성적에 따라 누군가를 차별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타협할 수 없는 분명한 관점으로서 시간관리 담론을 활용한다. 그런데 결국에는 본인 스스로가 그 ‘타협할 수 없음’에 발목이 잡혀 끊임없이 같은 경로를 반복하는 철장에 갇히게 된다.”
_ 오찬호(2012). 불안의 시대, 자기계발 하는 20대 대학생들의 생존전략. 서강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초록(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