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내면의 침전물을 詩라 칭하는 오인에서 방황하다, 김수영은 그것을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 정정하고 내뱉는다. 정리되지 않은 번잡함을 난해한 무엇으로 주목하는 일은 몽롱한 자기연민의 방조이다. 문학의 종언이 문학의 부정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 시대의 풍조를 제련하여 새로운 윤리로 견인하는, 젊은 시인의 초상을 망실하였음은 분명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