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은 “외부”라는 개념을 제안하였다. 그에 따르면, “내재성이란 외부에 의한 사유이다.” 환언하면 “어떤 것도 불변의 본성 같은 것은 없으며 그것과 관계된 것, 관계된 양상에 따라, 즉 그 외부에 따라 본성이 달라진다”고 보는 사유방식이다.

굳이 ‘외부’라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더 넓은 시야에서 보자’면 될 것을, 왜 상이한 어휘들을 동일한 의미로 엮는가. 현학적 악습이다. 그가 뛰어난 것은 인정하나 자기현시욕과 들뢰즈 환원주의는 학업을 그르치게 하고 있다.

이진경의 신작이 또 나왔다. 물론, 혹시 모른다. “아도르노에게 이렇게 어린애처럼 뽐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더라면 과연 그의 대작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 ‘외부’가 사유를 구성하는 사유되지 않은 영역을 뜻한다면, 그곳은 매트릭스에서 탈주하여 도달한 시온이 아니라 ‘영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