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정작 모른다. 실상 듣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로 지목하고 해결책을 주려 하는 것을, 은사로 사명으로 오해하고 있다. 당신들이 원인이라고, 더 큰 그림을 이야기할 수 없는 심연의 답답함. 선뜻 권하지 못함, 이것이 급소다. 왜, 그러한지 그들만 모른다. 되려 장애물이 되었다는, 애처로운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개혁은 늘 내면의 각성이다.